스물아홉 동갑내기 친구인 김경태·배상문과 비교하면 박성준〈사진〉은 여러모로 늦깎이 골퍼다.

어린 시절부터 국가대표로 명성을 날렸던 김경태와 프로 데뷔 이후 남자 골프의 강자로 발돋움한 배상문에 비해 그의 얼굴을 기억하는 팬은 많지 않다. 국내 투어 우승 기록도 없다. 2년 전 일본 투어에서 프로 첫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골프 최고 무대인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정상에 서보겠다"는 그의 간절한 꿈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일본 무대에서 자리를 잡아 가던 무렵 그는 미 PGA 2부 투어에서의 힘겨운 도전을 선택했다. 체격(175cm·73kg)이 크지 않은 그는 장타를 치지 못한다. 그래도 퍼팅으로 만회하면 된다며 해 질 녘까지 그린을 떠나지 않고 연습했다.

올 시즌 PGA 투어에 진출한 박성준(29)이 휴매나 챌린지에서 공동 2위에 올랐다. 올 시즌 5번째 출전한 대회에서 이룬 성과다. 박성준은 26일(한국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라킨타의 PGA 웨스트 파머 코스(파72·6950야드)에서 열린 4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 7개를 잡아내며 합계 21언더파 267타를 기록했다. 우승을 차지한 빌 하스(미국·22언더파 266타)에게 1타가 모자랐다. 맷 쿠차(미국) 등 4명과 공동 2위다.

박성준이 2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라킨타의 PGA 웨스트 파머 코스에서 열린 휴매나 챌린지 4라운드 1번홀에서 파 세이브를 한 뒤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선두 그룹에 3타 뒤진 채 4라운드에 들어간 박성준은 전반에 2타를 줄였고, 후반 들어 11번홀(파4)부터 14번홀(파5)까지 4개홀 연속 버디를 잡으며 선두 그룹에 1타 차로 따라붙었다. 17번홀(파4) 그린 가장자리에서 친 버디 퍼트가 홀 앞에서 멈춰 선 게 가장 아쉬운 순간이었다. 박성준은 18번홀(파5)에서 1.2m 버디 퍼트를 잡아내며 공동 선두로 먼저 마쳤다. 갤러리의 환호성이 쏟아졌다. 하지만 마지막 조에서 플레이한 하스가 16번홀(파4)에서 버디를 낚아 단독 선두로 나선 뒤 남은 2개홀을 파로 막아 우승을 지켰다.

공동 2위 상금 34만2000달러(약 3억7000만원)를 받은 박성준은 지난주 상금 랭킹 160위에서 43위(39만2901달러)로 117계단 뛰어올랐다.

박성준은 지난해 2부 투어인 웹닷컴 투어를 통해 2014~2015시즌 미 PGA 투어에 진출했다. 한국 선수로는 11번째였다. 박성준은 지난해 10월 PGA 데뷔전이었던 맥글래드리 클래식에서 공동 32위를 기록하는 등 이번 대회까지 5개 대회에서 4차례 컷을 통과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PGA 무대를 밟았지만 오랜 시간 준비하며 갈고닦은 실력 덕분에 적응이 빠른 편이다. 드라이버 샷은 평균 280야드대로 중하위권이지만 아이언 샷의 정확성과 퍼팅 실력은 PGA 투어에서도 상위권에 꼽힌다. 특히 3m 이내 퍼팅 실력이 뛰어나다.

목포가 고향인 박성준은 초등학교 때 테니스 선수로 뛰다 골프로 길을 바꿨다. 뉴질랜드로 골프 유학을 떠나 14세 때 뉴질랜드 23세 이하 대회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열여섯 살 때 귀국해 주니어 대표를 지냈고 2006년 한국프로골프(KPGA)투어에 데뷔했다. 좀처럼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던 그는 2011년 일본 투어에 진출해 2013년 바나 H컵 KBC 오거스타에서 처음으로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하지만 그의 눈은 더 높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박성준은 일본을 거쳐 미국에서 꿈을 이뤘던 최경주·양용은 선배의 길을 뒤따랐다. 2013년 말 2부 투어인 웹닷컴 투어 퀄리파잉스쿨에 도전해 공동 3위로 통과한 박성준은 지난해 웹닷컴 투어 파이널 시리즈 상금 랭킹 45위에 오르며 꿈에 그리던 PGA 투어 카드를 손에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