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수비수 김영권(25·광저우 에버그란데)에게 작년은 아픔의 시간이었다. 그는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뒷문을 든든히 지켜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2년 전 2012 런던올림픽에서 한국이 치른 6경기에 모두 풀타임 활약하며 사상 첫 올림픽 축구 동메달의 주역이 됐던 모습을 떠올리는 축구팬들이 많았다.
하지만 김영권과 홍정호(26·아우크스부르크)가 버틴 한국의 중앙 수비진은 월드컵 조별리그 3경기에서 6골을 허용하며 무너졌다. 특히 네 골이나 헌납한 알제리전은 김영권에겐 씻기 어려운 상처가 됐다.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1무 2패로 맥없이 탈락했다. 김영권은 일부 축구팬으로부터 '자동문'이라는 비하 섞인 별명까지 얻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 부임 이후에도 그는 한동안 확실한 믿음을 주지 못했다. 작년 11월 요르단과의 친선경기에서 잇따른 실수로 팬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김영권은 비난 여론을 신경 쓰기보다는 그라운드에서 자신의 몫을 해내는 데 신경을 집중했다. 아시안컵을 앞둔 지난 12월에 백년가약을 맺고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처음엔 기회가 오지 않았다. 조별리그 1차전인 오만전에서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는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봐야만 했다. 최근 수년간 국가대표 주전 수비수로 활약한 김영권에겐 낯선 모습이었다.
김주영(27·서울)의 부상이 그에겐 기회가 됐다. 김영권은 쿠웨이트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 출전해 무실점 수비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김영권은 이후 치른 경기에 계속 선발 출전했다. 그는 쿠웨이트 전부터 이라크와의 준결승전까지 4경기 연속 풀 타임(총 390분) 활약했고, 무실점 기록을 이어간 한국의 철벽 수비진을 이끌었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한국의 수비진은 '자동문'이 아니라 '철문'이었다.
김영권은 준결승에서는 후반 5분 이라크의 거센 반격을 잠재우는 멋진 왼발 슛으로 추가 골을 터뜨려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깨끗하게 날려버렸다. 김영권을 향해 불안한 시선을 보내던 일부 팬들의 비난도 찬사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