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영화를 함께 사랑하는 관객들에게 행복한 고민거리가 생겼다. 명장(名匠)과 명배우가 뭉쳐 만든, 취향도 성격도 다른 미술영화 두 편이 극장에 걸리는 것. '미스터 터너'(22일 개봉)는 영국의 '국민 화가' JMW 터너(1775~1851) 말년의 삶, 예술, 사랑 이야기. '빅 아이즈'(28일 개봉)는 1950년대 커다란 눈의 아이들을 그린 미국 화가 마거릿 킨이 사기꾼 남편에게 뺏겼던 원작자로서의 권리를 되찾는 실화다.

감독과 배우도 화려하다. '미스터 터너'는 '비밀과 거짓말'(1996)로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마이크 리 감독 작품. 작년 칸에서 기대를 모았던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대신 안면 미세 근육까지 움직이는 듯 명연을 펼친 터너 역의 배우 티모시 스폴이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빅 아이즈'는 한국에도 팬층이 두꺼운 팀 버튼 감독 작품. 주연 여배우 에이미 애덤스는 이 영화로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골든글러브 여우주연상(코미디·뮤지컬 부문)을 받았다.

명품 미술영화 ‘미스터 터너’(위 사진)와 ‘빅 아이즈’(아래)에는 검증된 명장(名匠) 마이크 리와 팀 버튼의 힘,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티모시 스폴과 미 골든글러브 여우주연상 수상자 에이미 애덤스의 명연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미스터 터너 : 스크린에 옮긴 터너의 황금빛 풍경

이 영화는 아름답다. '전함 테메레르의 마지막 항해' 등 터너의 유명한 그림들을 그대로 옮겨 놓은 장면들은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라 할 만하다. 작달막한 풀꽃들을 머리에 인 하얀 해안절벽, 파란색과 보라색이 층을 이룬 저녁놀 무렵의 하늘, 바위들이 흩어진 바닷가로 열을 지어 몰려오는 파도…. 멀리 바다에는 주황색 돛을 편 배들이 떠 있고, 생선 장수들은 나무 도마 위에서 물고기를 손질한다. 감독은 화면의 색온도를 살짝 높여 터너 그림의 인장과도 같은 노란색 안료 황연(黃鉛) 빛깔을 충실히 재현한다. 귀족의 살롱 음악회나 서민들의 시장통 풍경 등 19세기 영국 일상을 골고루 비출 뿐 아니라, 예술 애호가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의 환심을 사려는 왕립미술원 화가들의 경쟁과 질시 등 당시 예술판 풍경도 세심히 담았다. "그리스 조각 아프로디테를 닮았다"며 과부가 된 단골 여인숙 여주인에게 연심을 고백하는 터너의 모습이나, 현학과 허세로 예술을 논하는 귀족들 곁에서 하품하는 하녀 모습 등 소소한 재미를 주는 에피소드들이 이어져 150분 상영시간도 지루하지 않다. 청소년 관람 불가.

빅 아이즈 : '세상 가장 유명한 눈'을 둘러싼 진실게임

이 영화는 재미있다. 큰 눈의 멜랑콜리한 아이들을 그린 마거릿 킨(87)의 그림들은 1950년대 미국에서 포스터와 엽서로 불티나게 팔리며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미술품 시장의 잠재력을 증명한 첫 번째 사례로 꼽힌다.하지만 남편 월터(크리스토프 왈츠)는 숫기 없는 아내 대신 그림을 팔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세상에 자신을 화가로 알리고, 아내를 골방에 가둬 그림을 생산하게 한다. 이 희대의 사기극은 남편의 폭력을 피해 하와이로 도피한 아내 마거릿이 소송을 걸면서 들통난다. 팀 버튼 감독의 미술팀은 400여장의 눈 큰 아이들 그림을 재현해 화가 마거릿 킨의 작업실과 갤러리를 방문하는 듯 충실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상영시간 105분,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