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학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前 환경안전원장

2008~2013년 우리나라의 산업재해 사망률은 근로자 10만명당 8명으로 OECD 회원국 중 터키·멕시코에 이어 셋째로 높다. 정부는 안전사고나 재난 직후 매번 철저한 사후 조치와 예방 대책을 발표하지만, 안전 문화 수준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교육기관과 연구소 내 실험실 종사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2006년 연구실 안전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이 제정·시행됐고, 당시 과학기술부에 연구환경안전과가 신설됐다. 하지만 현재 미래창조과학부 내 연구환경안전팀으로 강등·위축됐고, 예산과 직원 수는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 어느 공무원이 이런 팀에서 안전 문화 정착에 헌신하겠는가?

대학원생(연구원)들은 하루 12시간 실험실에서 각종 위해성 화약물질과 실험장비를 다룬다. 하지만 소속 대학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직접 안전 교육을 시킨 후 실험실 출입을 허가하는 대학이 몇 개나 될까? 학생 2~3명의 한 학기 등록금 정도면 전체 학생의 안전 교육이 가능한데도 예산 핑계로 온라인 교육으로 연구실 안전법의 법망을 피해가는 대학이나 연구기관들이 즐비하다.

안전 문화 증진에 기여하려는 기부 문화의 부재도 아쉽다. 서울대학교가 2009년 정문 바로 옆에 신축한 안전실습체험관은 6년이 흘렀지만 기부자가 없어 원래 계획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정보통신·바이오·국제화 관련 연구소와 센터·국제관·도서관에는 많은 기부가 행해지고 있다.

자연재해는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준다. 반면 안전사고나 산업 재해는 경제적·신분적 약자들에게 그 피해가 편중된다. 얄궂게도 안전 문화에 둔감하기 쉬운 사회적 강자가 재난을 예방·치유할 예산 편성, 행정, 법 제정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국내 현실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국내 안전 문화의 후진성은 안전 체감의 비대칭, 즉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사회적 신분이 높은 이일수록 사고나 재해에 덜 노출돼 안전 문화의 중요성을 덜 실감하는 것에 원인이 있다고 하겠다. 서울대에서 안전 교육을 수강한 학생들의 설문지에서 "우리 교수님에게도 안전 교육을 시켜달라"는 요구가 적지 않음은 안전 체감이 이원화된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대학교수를 비롯해 사회 지도층에 있는 국회의원, 행정관료, 정치인, 법조인들에게 안전 교육을 먼저 시키는 것이 우리나라 안전 문화를 조기에 정착시킬 지름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