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은 법조계 공무원들과의 친분을 이용해 청탁 명목으로 돈을 받고, 가정부에게 돈을 갚지 않기 위해 유흥업계 종사자들을 동원해 죄질이 나쁜데도 책임 회피에만 급급해하고 있습니다."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 이범균 부장판사가 이같이 말하자 미간을 찌푸리며 서 있던 임모(여·56)씨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임씨는 채동욱(56) 전 검찰총장의 내연녀로 지목된 인물이자 채 전 총장의 혼외자(婚外子) 채모(13)군의 어머니다. 그는 채 전 총장과의 관계를 이용해 사건 청탁 부탁과 함께 1400만원을 받고, "채 전 총장과 아이(채군)의 관계를 발설하지 말라"며 가정부를 협박한 혐의 등으로 지난해 5월 불구속 기소됐다.
임씨의 혐의 대부분은 채 전 총장과 관련돼 있다. 임씨는 재판 초기 "상대방(채 전 총장)의 명예가 훼손될 우려가 있으니 재판을 비공개로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8개월간의 재판 끝에 임씨는 이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1400만원을 선고받았다.
앞서 지난달 4일에는 이른바 '채동욱 스폰서'로 지목된 채 전 총장의 고교 동창 이모(57)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가 있었다. 회사 돈을 빼돌려 임씨 아들 채군의 계좌로 2억원을 송금한 혐의 등을 받았던 그는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씨와 검찰이 모두 상고(上告)하지 않으면서 형(刑)은 그대로 확정됐다.
채군의 개인 정보를 불법 조회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조오영 전 청와대 행정관, 조이제 서울 서초구청 국장, 송모 국정원 정보관도 지난해 11월 1심 선고를 받았다. 이번에 임씨도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면서 채 전 총장의 혼외자 파문에 연루된 사람들의 재판이 사실상 일단락된 셈이다.
그 재판들이 하나씩 끝날 때마다 법조계 인사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던지는 질문이 있었다. "채 전 총장은 지금 어디에서 뭐 하고 있나?" "채 전 총장의 현재 입장은 어떤가?"
하지만 대답을 해야 할 장본인은 혼외자 논란이 벌어진 이후 15개월 동안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없이 숨어 지내고 있다. 2013년 9월 30일 퇴임식에서 "유전자 검사를 신속히 성사시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했던 그는, 작년 5월 검찰이 '채군이 채 전 총장의 혼외자인 것으로 보인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을 때에도 단 한마디 해명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국민이 그에게서 마지막으로 들은 말은 "혼외자 논란은 사실이 아니다"는 '거짓말'뿐이었다.
채 전 총장은 대한민국 검찰의 수장(首長)이었고, 그의 거짓말로 인해 온 국민이 혼란을 겪었다. 그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한 후배 검사는 진실이 드러나자 "슬픈 수사였다"며 검찰을 떠났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논란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내려진 이 시점에 무언가 한마디쯤 입장 표명을 하는 것이 한때 자신이 짊어졌던 공직(公職)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