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서 가장 유명한 등번호는 '10번'이다. 펠레(브라질)가 세 번의 월드컵에서 우승하며 '축구 황제'로 올라선 이후 그의 백넘버인 10번은 팀의 에이스를 상징하는 번호가 됐다.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와 로타어 마테우스(독일), 지네딘 지단(프랑스),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 등의 축구 영웅들이 10번의 영광을 계승했다.
2015 호주 아시안컵에서 55년 만의 우승에 도전하는 한국 대표팀의 10번은 남태희(24·레퀴야)다. 아시안컵은 9일 오후 6시(이하 한국 시각) 호주 멜버른에서 호주―쿠웨이트의 개막전으로 막을 올린다.
◇남태희의 드리블은 한국의 무기
최근 한국 축구의 10번은 주로 박주영(30·알샤밥)이었다. 박주영은 2006·2010·2014 월드컵에서 잇달아 10번을 달았다. 박주영을 아시안컵 최종 명단에서 제외한 울리 슈틸리케(61·독일) 대표팀 감독은 새로운 10번의 주인공으로 남태희를 낙점했다.
지난 4일 사우디아라비아와 벌인 평가전은 남태희가 10번을 달 자격이 있음을 보여준 경기였다. 전반 한국은 느린 템포로 일관하며 상대에 주도권을 내줬다. 슈틸리케 감독은 후반 들어 남태희를 포함해 4명을 교체했고, 흐름은 다시 한국으로 넘어왔다.
패스 타이밍이 빠르고 스피드가 뛰어난 남태희가 공격형 미드필더로 들어오면서 한국의 공격 속도는 빨라졌다. 남태희는 이날 자신의 주특기인 드리블 실력도 유감없이 보여줬다.
후반 추가 시간 페널티 지역 왼쪽 바깥에 있던 남태희는 절묘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제친 뒤 정확한 크로스를 올렸다. 이는 김창수를 거쳐 이정협의 쐐기골로 연결됐다. '카타르 리그의 메시'라는 별명이 절로 떠오를 만큼 완벽한 개인기였다.
세계 강호들과 맞대결하는 월드컵과 달리 아시안컵은 대부분 경기에서 한국이 공격을 주도하고, 상대는 수비에 치중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좁은 공간에서의 드리블에 능한 남태희의 존재감은 더욱 커진다. 밀집 수비를 당해 공격 전개가 어려울 때 남태희가 순간적인 드리블 돌파로 상대 수비에 균열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카타르 리그에서 4시즌째 뛰는 남태희의 경험도 중동팀을 자주 상대해야 하는 한국으로선 큰 자산이 될 수 있다. 남태희는 지난 시즌 16골을 터뜨리며 소속팀 레퀴야의 정규리그 우승을 이끄는 등 카타르 리그 최고 선수로 활약 중이다.
◇월드컵 아픔 딛고 아시안컵을 기다렸다
지난 10월 슈틸리케 감독이 한국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뒤 남태희에겐 새 별명이 생겼다. '슈틸리케의 황태자'다. 남태희는 슈틸리케 감독 부임 이후 한국이 치른 5경기에 모두 출전했다.
처음부터 슈틸리케 감독이 남태희를 마음에 들어 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카타르 리그에서 오래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승리보다는 연봉에 가치를 두는 선수를 자주 봐온 슈틸리케 감독이 남태희 역시 그런 선수일 수 있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다소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지켜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열정과 근성을 강조한 슈틸리케 감독에게 성실한 훈련 태도로 정평이 나 있는 남태희는 매력적인 선수일 수밖에 없었다.
남태희는 10일 오후 2시 호주 캔버라에서 열리는 아시안컵 조별리그 1차전 오만전에 선발 출격할 전망이다. 그는 2012년 2월 오만과 벌인 런던올림픽 아시아 최종 예선에서 경기 시작 1분 만에 선제골을 터뜨린 좋은 기억이 있다. 남태희는 AFC(아시아축구연맹) 홈페이지 인터뷰에서 "오만은 빠른 선수가 많아 경계해야 할 팀"이라며 "첫 경기가 중요한 만큼 최대한 집중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