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또라이가 센지 서울 또라이가 센지 붙어보지 뭐.”

주말극 최강자로 군림 중인 MBC '전설의 마녀'(시청률 26.6%)는 이 또라이에게 빚졌다. 제작 발표회에서 주성우 PD가 "신의 한 수"라고 한 그분이다. 여자교도소 재소자를 다루는 탓에 분위기 처질까 긴급 투입한 캐릭터가, 지금은 극의 핵심이 됐다. 배우 김수미(66)다. 인터넷엔 "MBC는 김수미에게 연말 특별상을 수여하라" 같은 글이 한가득이다. "원래 초반 5회, 후반 5회 정도만 출연하는 거였는데, 재밌다고 계속 나와 달래. 연기 인생 45년 만에 이런 일은 처음이야."

6일 오전 찾은 서울 반포동 김수미의 집은 꽃이 한가득했다. 그는“왈가닥에 곗돈 밝힐 것 같겠지만, 꽃만 보면 미치는 천생 여자”라고 말했다.

일자무식에 철면피지만, 복권 당첨금으로 졸부가 돼 감방 동기들과 티격태격하며 정드는 김영옥 역할을 맡았다. 배역 이름부터 김수미의 본명이고, 전북 군산 출신인 것도 같다. 그를 염두에 둔 대본이다. "이젠 '일용 엄니' 대신 '영옥 언니'라면서 난리야." 압권은 그가 '지역 특산물'이라 일컫는 전매특허 전라도 욕설과 맛깔난 애드리브."집구석이 빵(감방)보다 더 춥네" "이문(박인환)씨를 이문씨라 하지 그럼 항문씨라고 불러?" 등 생각나는 애드리브는 모두 메모한 뒤 제작진에 건의한다. 연기가 코믹으로 점철되다 보니, 제일 힘든 건 웃음을 참는 것. 그래서 촬영 날엔 꼭 지난달 죽은 애완견 삼식이(13)를 떠올린다. "안 웃으려고 이를 하도 깨물어서 머리가 띵할 때도 있지."

가끔 방송 불가 수준의 차진 욕설이 떠올라 혼자 안달이 난다. "수위 때문에 재밌는 대사 못할 땐 내가 꼭 분재(盆栽)가 된 것 같아." 그러다 원을 풀었다. 오는 3월 개봉하는 '욕 오디션'을 다룬 영화 '헬머니(Hell+할머니)' 주인공에 캐스팅된 것. 영화 '화순이'(1982) 이후 33년 만의 단독 주연이다.

신들린 연기를 보여주지만, 진짜 신들린 적이 있다. 1998년 집 앞에서 운전기사가 몰던 김수미의 차에 치여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빙의(憑依)가 왔다. 알코올중독, 자살 충동이 뒤따랐다. 그런 그를 다시 일어서게 한 건 우정. 일감이 끊겨 여기저기 돈 꾸러 다닐 때, 오랜 친구인 배우 김혜자가 통째로 내민 통장 같은 것이다. 이 드라마를 관통하는 메시지도 피 한 방울 안 섞인 이웃 간의 뜨거움. 그가 매주 토요일 50인분 전기밥솥과 10여 가지 반찬을 직접 챙겨 가 촬영 스태프에게 집밥을 먹이는 이유다. "웃을 일 별로 없잖아. 얼마나 좋아.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게." 매일 시청자게시판 댓글을 인쇄해서 보는 그는 얼마 전 '여든 살 된 아버지가 김수미씨 보고 웃는다. 고맙다'는 글을 읽었다. "누군가를 즐겁게 해줄 수 있다는 게 행복해. 배우 되길 참 잘했어."

서른세 살 때 극 중에서 환갑잔치를 했던 그가, 이젠 일용 엄니의 나이를 넘어섰다. “달라진 건 없어. 그저 많이 웃겨 주고 베풀고 싶어.” 그가 제일 좋아하는 건 나팔꽃. 그가 건넨 명함에 보라색 나팔꽃이 그려져 있다. 꽃말이 ‘기쁜 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