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몇 년 전 '인류 최초'로 살 빼는 약이 등장했다. 제니칼이라는 파란 캡슐이다. 식사 중에 약을 먹으면 음식이 소화되는 과정에서 지방질 흡수를 차단해 섭취 지방의 30%를 대변으로 배출시키는 원리다. 일종의 기름 제거제다. 국내 시판 당시 호기심으로 삼겹살 회식 후 먹어봤다. 이튿날 변기에 휘황찬란하게 뿌려진 노란 기름에 화들짝 놀랐다. 기름진 음식을 적게 먹어야겠다는 시각적 심리 효과만큼은 확실했다.

▶제니칼은 "약으로 비만을 치료하는 시대가 왔다"며 화제를 모았다. 2002년엔 230여억원어치가 팔려나갔다. 그러자 온갖 실수담이 쏟아졌다. 다음 날 방귀를 뀌었는데 기름이 튀어 흰 바지 엉덩이 부분이 노랗게 물들었다더라, 여배우가 방송 인터뷰 도중 화장실을 몇 차례 들락거렸는데 앉은 자리에 고추기름 같은 게 묻었다는 민망한 얘기들이 나왔다. '기름 설사'가 나오는 불편함 때문인지 제니칼은 요즘 한 해 40억원어치쯤만 팔린다.

▶이어 나온 비만약이 리덕틸이다. 대뇌(大腦) 중추에 작용해 식욕을 떨어뜨리고 포만감을 일으키는 약이다. 살찐 사람들이 우르르 리덕틸로 몰려갔지만 심장박동을 증가시켜 심장병 사망률을 높이는 것으로 조사돼 2010년 퇴출당했다. 몇 년 전엔 의학계를 흥분시킨 '리모라반트'라는 비만 치료 후보 약이 있었다. 신진대사를 높여 먹으면 살이 빠졌다. 그러나 임상시험에서 자살률을 높이는 것으로 나와 중도 탈락했다. 해당 제약회사의 주가만 쏙 빠졌다.

▶살 빼려고 간질약이나 우울증약을 먹는 이들이 있다. 식욕이 떨어진다고 해서다. 드물게 갑상선 호르몬제를 먹기도 한다. 신체 대사율을 높여 지방을 태우려는 것이지만 뼈가 망가질 수 있는 위험한 시도다. 최근 나온 '포시가'라는 당뇨병 약은 콩팥에서 혈당 70g쯤을 소변으로 내보낸다. 하루 300㎉를 빼주는 효과가 있다. 한 시간 반 걷기에 해당한다. 체중과 혈당이 떨어져 점차 인기를 끌고 있지만 장기 효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밥을 먹은 것처럼 몸을 속여 칼로리를 소비시키는 신개념 다이어트 약이 개발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상상 음식'이라고 부르는 이 약은 생쥐 실험에서 효능이 확인됐다. 인간에게 어떨지는 한참을 두고 봐야 한다. 우리 몸은 수백만년 동안 먹을거리를 찾아 헤매며 생존한 조상의 몸을 이어받았다. 음식이 들어오면 어떻게든 지방으로 저장하려는 '절약 유전자'가 박혀 있다. 그 몸이 약 하나에 고분고분하겠는가. 일단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