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닐 때 '훌라송'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저 멀리서 검은색 제복에 마스크와 모자, 최루탄 발사기로 무장한 진압대가 한발 한발 다가온다. 그럴 때 이쪽에서 부른 노래가 '훌라송'이었다. "우리들은 정의파다 훌라훌라/ …/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 원한다." 주먹을 쥐고 노래 부르다 보면 모두가 하나 되고 두려움도 사라지는 것 같았다.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는 걸 안 건 나중이었다.

▶무릎을 꿇는 건 굴복(屈服)이나 굴욕(屈辱)을 뜻한다. 굴(屈)은 주검을 가리키는 시(尸)와 출(出)의 발음을 합친 말이다. 그러니 무릎을 꿇는다는 건 살아도 살아 있는 게 아닌 상태다. 역사에는 더 큰 뜻을 이루기 위해 한때 무릎을 꿇은 경우도 있긴 하다. 한(漢) 고조 유방(劉邦)을 도와 나라를 세운 한신(韓信)은 젊어서 겁쟁이로 소문났다. 동네 건달이 여러 사람 앞에서 그를 놀렸다. "죽고 싶으면 나를 찌르고 살고 싶으면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라." 한신은 아무렇지 않게 건달 가랑이 밑으로 기었다.

▶한신은 이런 굴욕을 견뎌내고 대장군이 됐다. 나중에 그 건달에게 벼슬을 주기까지 했으니 이건 해피엔딩이다. 개인의 삶이나 나라의 운명에는 원치 않게 무릎을 꿇게 만드는 악조건들이 많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피난갔던 인조는 47일 만에 성에서 나와 청나라 황제에게 세 번 무릎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렸다. 우리 역사에서 다시 있어선 안 될 치욕의 현장이다.

▶요즘은 '을사조약(乙死條約)'이라는 게 사람들을 무릎 꿇게 한다. 힘을 가진 갑(甲)과 그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을(乙)의 문화가 일상화한 현실을 풍자하는 말이다. 갑을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실에서 갑의 부당한 횡포가 을의 존재를 짓밟고 그를 인격적 죽음으로 몰아간다. 한 조사에선 직장인 80%가 자신을 을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경기도 부천 어느 백화점 주차장에서 손님 모녀(母女)와 주차 요원 아르바이트생 사이에 주차를 둘러싼 시비 끝에 아르바이트생이 무릎을 꿇는 일이 일어났다. 대한항공 부사장이 기내 땅콩 서비스를 트집 잡아 비행기 사무장과 스튜어디스 무릎을 꿇게 한 지 얼마 안 됐다. 자세한 경위는 더 밝혀져야 하겠지만 이번에도 갑의 횡포라고 분노가 무섭게 확산됐다. 아르바이트생이 무릎 꿇는 걸 보고 나 자신이 굴욕을 당하고 있는 듯 느끼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는 것은 개인 의지 문제이자 그걸 가능하게 하는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