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170㎝, 몸무게 68㎏. 스페인 축구대표팀을 이끄는 사비 에르난데스(34·바르셀로나)는 운동선수치고는 그리 큰 체구가 아니다. 다른 선수들처럼 발이 빠르지도 않고 대포알 슈팅을 날릴 수 있을 만큼 발목이 강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작은 거인' 사비는 자신이 속한 대표팀과 클럽을 모두 세계 정상에 올려놓으며 스페인 역사상 가장 뛰어난 미드필더로 평가받는다.

최근 국내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에서는 '패스마스터' 사비를 심층 분석한 다큐멘터리 영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일본 NHK방송이 제작한 '미러클 보디(Miracle Body)' 시리즈의 '사비와 이니에스타' 편이다. 미러클 보디 다큐 시리즈는 체육대학 교보재로 사용될 정도로 수준이 높다.

사비 에르난데스가‘아이마크 리코더’장치를 착용한 채(오른쪽 사진) 미니 게임을 뛰고 경기를 복기하고 있다. (왼쪽 사진)

NHK는 사비의 비범한 '축구 본능'을 설명하기 위해 3가지 실험을 했다. 첫 번째 실험에서 사비는 얼굴에 '아이마크(eye mark) 리코더'와 소형 카메라를 착용한 채 미니게임을 뛰었다. 아이마크 리코더는 사비의 동공이 어느 지점을 보는지 관찰하기 위한 장치다. 실험 결과 사비는 자신이 공을 갖고 있건 가지고 있지 않건 수시로 주변을 둘러보며 다른 선수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심지어 자신에게 패스가 오는 순간에도 주변을 한 번 더 살피며 다음 플레이를 준비했다. 스페인 1부 리그의 선수가 똑같은 실험에서 시선의 80%를 공에만 집중한 것과 매우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사비는 실제 경기에서 90분 풀타임을 뛰는 동안 약 850번 넘게 머리를 움직여 주변을 돌아본 것으로 나타났다.

두 번째 실험에선 사비의 시점에서 녹화한 플레이 영상 중 일부 장면을 사비에게 보여준 뒤, 각 선수들의 위치를 칠판에 점을 찍어 그려보게 했다. 사비는 바둑 기사가 경기 후 대국을 그대로 복기하는 것처럼 3차원 화면에 있던 20명 선수 중 16명의 위치를 평면 지도에 정확하게 표시했다. 다른 스페인 선수는 같은 실험에서 6명의 위치만 일치하게 그렸다. 사비는 "내 눈엔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그라운드가 훤히 보인다"며 "축구는 육체보다 두뇌가 중요한 운동이기 때문에 머리가 나쁜 선수는 절대 축구를 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마지막 실험에서 사비가 자신의 경기 장면을 보며 어느 곳으로 패스할지 리모컨 버튼을 눌러 선택하는 동안 의료진은 그의 두뇌를 MRI(자기공명영상)로 240번 촬영했다. 이때 사비의 두뇌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대뇌기저핵'이란 부분에서 더 활발한 반응을 보였다. 대뇌기저핵은 인간이 반복적으로 겪은 경험 중에서 매우 중요한 기억들을 저장해놓는 곳이다. 사비는 "바르셀로나 유스 시절부터 익혔던 수만 가지 패스 공략 유형이 실전에서 무의식중에 나오는 것 같다"고 했다.

다큐는 사비와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돌파형 미드필더 안드레스 이니에스타(30·바르셀로나)의 두뇌도 분석했다. 이니에스타는 다섯 개의 점을 펜으로 그어 최대한 많은 도형을 만드는 '창조성' 측정 실험에서 상위 1%의 성적표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