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세 가족이 돌아왔다.

MBC '한 지붕 세 가족' 종영 20년, 드라마 속 이웃들이 속속 한 지붕으로 헤쳐 모이고 있는 것. 그간 혈육으로 얽힌 대가족 드라마가 흥행 공식으로 여겨졌지만 KBS 일일극 '당신만이 내 사랑', MBC 주말극 '전설의 마녀', SBS 새 일일극 '달려라 장미'처럼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남이 한집살이하며 서로 위안이 돼주는 드라마가 다시 전파를 타고 있는 것이다.

'돕고 사는 온정'의 판타지

드라마는 한결같이 착한 이웃이 딱한 이웃을 자기 집에 거둬들이는 줄거리다. '전설의 마녀'의 한국여자교도소 보안계장 출신 박인환은 갓 출소해 오갈 데 없는 고두심을 자기 집에 돈 한 푼 안 받고 거둬들인다. 이후 함께 감옥살이를 했던 한지혜·하연수가 이 집에 새 식구로 합류한다. 장인(박인환)+사위(하석진)+손녀(이한서)로 단출했던 한 식구가 졸지에 혈육을 뛰어넘는 세 식구로 커진 것. 구현숙 작가는 "친가족끼리도 험악한 요즘, 세상에 혼자 내버려진 사람끼리 서로 가정을 이룬다면 피를 나누지 않았더라도 결핍을 메우며 따뜻한 가족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드라마‘당신만이 내사랑’‘전설의 마녀’‘달려라 장미’(위부터).

등장인물들은 모두 핍진하다. 배우자와 사별했거나, 이혼녀·미혼모이고, 편부·편모 슬하의 자녀인 식이다. SBS 새 일일극 '달려라 장미' 역시 풍족하게 살다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한순간에 나락에 떨어진 이영아·윤유선 모녀에게 착한 떡집 사장(이대연)이 자기 집 아래채를 헐값에 월세 내주면서 같이 살게 되는 스토리. 이후 철없는 재벌 3세 고주원도 이 집에 합류해 '한 지붕 세 가족'을 완성한다. 김영인 작가는 "이웃사촌의 개념이 희박해진 요즘이야말로 이웃이 서로 도우며 가족이 돼가는 판타지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집 안에서 꽃피는 사랑?

남남이기에 집 안 내 '연애전선' 형성에 용이한 점도 드라마의 장점. '전설의 마녀'의 박인환과 고두심은 연인 관계로 발전하고, 덩달아 한지혜와 하석진도 로맨스를 가꿔간다. '달려라 장미'의 이대연·윤유선, 고주원·이영아 역시 묘한 기류를 형성한다. 지난 10월 종영한 SBS 주말극 '기분 좋은 날'의 이상우·박세영도 마찬가지. 드라마 평론가 공희정씨는 "한국 드라마 특유의 로맨스에 대한 강박처럼 보이긴 해도, 한집에서 살을 부대끼다 사랑의 감정이 생긴다는 설정은 개연성이 있다"면서 "드라마가 변화된 가족 세태를 반영하는 동시에, 그 안에서 또 다른 가족의 탄생을 그려낸다"고 말했다.

'더 패밀리'에서 '패밀리즈'로

드라마는 1인 가구의 폭발적 증가(488만 가구), 셰어하우스(share house)류의 신종 주거 공간 등 가족 형태의 변화를 충실히 반영한다. 지난 9월 종영한 SBS 수목극 '괜찮아 사랑이야'에 이어 KBS 새 일일극 '당신만이 내 사랑'도 셰어하우스를 배경으로 한 지붕 세 가족을 다룬다. 잘나가는 방송국 PD에서 과일 장수가 된 여자, 가족에게 버림받은 중년 여자, 코피노(Kopino·한국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의 혼혈자녀) 등 세 식구가 한집에서 복작대는 줄거리다.

지난달 21일 제작발표회에서 진형욱 PD는 “우린 비록 서로 남이지만, 가족이라고 여길 때 관용이 생겨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드라마”라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겨울이라는 계절적 요인과 함께 세상이 각박해지면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가족의 판타지를 소환하게 마련”이라며 “가족 구조가 ‘더 패밀리(The Family)’에서 ‘패밀리즈(Families)’로 가고 있다. 친족 중심 대가족의 현실성이 희박해지자 남남으로 이뤄진 가족 구성원으로 드라마 등장인물이 바뀌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