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전 리듬체조 국가대표 김윤희(23)는 '아이돌 걸그룹' 같은 외모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들로 자신을 소개했다. "집 앞에 산과 밭이 있는 시골에서 참새, 뱀, 메뚜기 잡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남자아이들 사이에서도 제가 분위기를 주도하는 '대장'이었죠. 방아깨비 구워서 드셔 보셨어요? 얼마나 고소한데요. 호호."
김윤희는 올해 인천아시안게임 시상대에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동안 김윤희가 국제대회에서 딴 메달은 총 4개. 아시아선수권(2006·2009·2013)과 아시안게임(2014)에서 모두 은메달만 목에 걸었다.
올해 11월 전국체전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친 김윤희는 "인천아시안게임은 제 마지막 국제대회였는데, 전날 긴장을 너무 많이 하고 잠을 설쳐서인지 볼과 후프에서 실수를 많이 했다"며 "그동안 뒷바라지해주신 부모님과 열심히 해준 동생들에게 금메달을 가져다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해서 울었다"고 말했다.
경기도 김포 운양동에서 태어난 김윤희는 친구들과 잠자리채를 가지고 산과 들로 놀러다니던 왈가닥 소녀였다. 김윤희가 리듬체조를 시작한 것은 김포초등학교 2학년 때다. 우연히 TV에서 리듬체조 경기를 보다가 발레처럼 우아하고 화려한 매력에 푹 빠진 어머니 박미화(43)씨가 김윤희의 학교에 리듬체조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적극 권유했다고 한다. "처음엔 어린 나이에 해볼 수 없는 화장, 예쁜 경기복이 맘에 들어 시작했어요. 딱딱한 슈즈를 신고 훈련하면 발이 많이 아팠지만, 연기를 완벽하게 마치고 나서 들리는 박수 소리가 듣기 좋아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김윤희의 부모님은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딸이 무대 위에서 화려한 꽃으로 피길 바라는 마음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리듬체조 선수는 한 달에 약 100만원 하는 레슨비 외에도 매년 리본·후프·공·곤봉 등 총 4종목의 경기 의상을 새로 맞춰야 한다. 저렴한 것은 100만~150만원, 비싼 것은 300만원 가까이 든다. 김윤희는 "부모님께서 뒷바라지하시느라 빚도 지고 집안 기둥 몇 개는 뽑은 것 같다"고 말했다.
부모님의 마음을 아는 김윤희는 하루 10시간씩 훈련에 매진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전국대회 6관왕에 오른 김윤희는 국가대표 상비군에 최연소로 발탁되며 한국 리듬체조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엔 전국체전 동·은·금메달을 땄고, 세종대에 진학한 뒤엔 2011년부터 대학·일반부 2연패를 이뤘다. 168㎝의 큰 키와 긴 팔다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워풀한 연기가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국가대표 생활 8년 동안 국제대회에서는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이며 '국내용'이란 오명을 얻기도 했다. 손연재(20·연세대)라는 걸출한 후배가 등장한 것도 부담이 됐다. "선수들끼리는 딱 보면 레벨이 다르다는 걸 알아요. (손)연재를 한번 이겨보려고 기를 쓰면서 노력했지만 연재는 커다란 '벽'처럼 느껴졌어요. 하지만 그런 존재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저에겐 큰 행운이었죠."
김윤희는 올해 전국체전을 끝으로 은퇴한 뒤 지난 11월 리듬체조 경기 지도자 2급 자격증을 땄다. 그는 요즘 자신을 11년 동안 가르쳐준 선생님이 있는 서울 세종고등학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 "국제대회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서 금메달을 걸고 애국가를 듣지 못한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았어요. 이젠 후배들을 통해 금메달 꿈을 꼭 이룰 테니 지켜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