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환자에 스스로 머리카락을 뽑는 발모광(拔毛狂)이 있다. 발모벽(癖) 환자라고도 부른다. 이들은 두피가 보일 정도로 머리숱이 드문드문 비어 있다. 머리카락이 군데군데 지저분하게 빠져 있어 원형 탈모증과는 모양새가 다르다. 스트레스를 못 견디고 제 머리카락을 잡아채서 그렇다. 10대 소녀에게 흔한 충동 조절 장애다. 정서적으로 결핍하거나, 불안과 스트레스를 견디는 조절 능력에 문제가 있어 생긴다.
▶홧김 방화, 차량 돌진, 우발적 칼부림 같은 것을 보통 분노 조절 장애라고 부른다. 정신의학에서는 '간헐성 폭발성 장애'라는 진단명을 쓴다. 크게 봐서 충동 조절 장애다. 사소한 화에도 아드레날린을 비롯한 스트레스 흥분 호르몬이 지나치게 분비된 상황이다. 상황에 맞지 않는 분노를 지나치게 표출하면서 이성적 판단을 하는 전두엽 기능을 마비시킨다. 자기 행동이 미칠 결과를 예측 못하고 폭력을 휘두르고 물건을 부순다. 그러고는 후련해하거나 후회한다.
▶30대 남자가 고속도로에서 끼어들기를 하다 다른 차가 양보하지 않자 분을 참지 못했다. 터널 안에서 그 차를 세우고 앞 유리창과 보닛을 삼단봉으로 박살 냈다. 삼단봉은 짧은 막대가 3단으로 접혀 손잡이 부분 안에 밀려 들어가 있는 호신용 무기다. 피해자 차의 블랙박스에 찍힌 동영상을 보면 그의 행동은 분노 발작에 가깝다. 이럴 때 상대방을 설득해봐야 소용없다. 술에 만취한 사람과 같아 일단 피하는 게 상책이다.
▶'땅콩 회항'을 일으킨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도 분노 조절에 실패한 사례라는 게 한 정신과 의사 분석이다. 성장기에 적절한 욕구 충족과 좌절이 엇갈려야 인격이 성숙한다. 바라는 게 웬만큼 이뤄져야 긍정의 심리가 생긴다. 거기에 적절한 좌절도 겪어봐야 세상이 자기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터득한다. 좌절 없이 충족만 누리면 존재감은 극대화하고 세상을 얕보게 된다. 결국 어쩌다 자기 성에 안 차면 극도의 분노를 드러낸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하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경찰청 통계로는 폭행·상해·협박·공갈·약취·감금 범죄의 절반 가까운 46%가 우발적 범행이다. 충동 조절 장애 환자도 지난 5년 사이 두 배 늘었다. 지나친 생존 스트레스, 속으로 삭이다 폭발하는 소통 부족, 자녀 과잉보호, 폭력 게임과 자극적인 드라마를 원인으로 꼽는다. 분노 발작 뒤에는 패가망신이 기다린다. 모든 화(火)는 자기에게 화(禍)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공감하게 가르치는 심성(心性) 교육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