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가 1월 1일자부터 연중(年中) 기획 시리즈 '한자 문맹(漢字文盲) 벗어나자'를 연재한 올해, 우리나라 교육사에서 의미 있는 청신호가 하나 켜졌다. 지난 9월 24일 교육부가 "2018년부터 초등학교 3학년 이상 학년이 사용하는 교과서에 한글과 한자를 병기(倂記)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교육부는 "현재 학생들에 대한 한자 교육이 부족해 의미 소통 등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감안했다"며 ▲2018학년에는 초등 3·4학년 ▲2019학년 초등 5·6학년 교과서에 한자 400~500자를 한글과 병기하도록 권장하는 교과서 집필기준 지침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1970년 한글 전용화(專用化) 정책으로 한자가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빠진 지 48년 만에, 초등학교 공교육에서 한자 교육이 되살아날 가능성을 보이게 됐다. 그동안 '한자 문맹'의 위험성을 지적해온 전문가들은 "한자 때문에 학업 부담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한자가 어휘력을 향상시키는 열쇠가 되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말한다.

①한자는 '외국어' 아닌 '우리말'

교육부의 '2018년 초등학교 한자 교육안'은 '한문' 과목을 신설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교과서의 어휘에 한글과 함께 '한자'를 노출하겠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한자 교육은 어디까지나 '우리말 교육'의 일환이며, 결코 '외국어 교육'이 아니라는 것을 많은 전문가가 강조하고 있다. 진태하 인제대 석좌교수는 "우리말 어휘 중 70%가 표의성(表意性)의 한자어로 돼 있어, 표음성(表音性)의 한글로는 어휘를 쉽게 표기할 수는 있어도 그 뜻을 알기 어렵다"며 "한자 교육은 한글과 한자라는 훌륭한 두 날개가 공존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②단어의 '뜻'을 쉽게 밝히는 열쇠 돼야

조어력(造語力)이 뛰어난 한자는 글자 하나를 습득하면 여러 단어의 뜻을 쉽게 익히도록 해 준다. 경희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공부한 폴란드 유학생 아그네스카 상보르스카씨는 한 학술강연회에서 "'생(生)'이란 글자의 뜻을 알고 나니 '생방송(生放送)' '생존경쟁(生存競爭)'의 의미가 훨씬 쉽게 다가왔다"고 했다. 전광진 성균관대 교수는 "한자는 이미 그 자체로 뜻을 암시하는 힌트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자를 모르면 힌트는 고사하고 동음이의어조차 구별하기 어렵다. '의사(義士)'와 '의사(醫師)', '연패(連敗)'와 '연패(連覇)'가 어떻게 다른지는 한글만으론 설명하기 불가능하다.

③전(全) 과목에 활용하도록 해야

한자를 알면 수학 시간의 '등호(等號)'가 '서로 같음을 나타내는 부호', 과학 시간의 '양서류(兩棲類)'가 '땅과 물 양쪽에서 서식하는 무리', 역사 시간의 '사화(士禍)'가 '선비가 화를 입은 일'이란 뜻이라는 것을 이해하면서 공부할 수 있다. 김언종 고려대 교수는 "현행 교육과정에서는 어느 교과서든 단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자어를 뜻도 모른 채 영어 단어처럼 외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제 한자 병기가 학습의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④교사들에게 먼저 한자 교육을

초등학교 교과서에 다시 한자가 실린다면,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전에 먼저 해결돼야 할 문제가 있다. 정원식 전 국무총리는 최근 월간 '한글+한자문화' 기고문에서 "현재의 초등학교 교사들이 대부분 한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우선 교사를 위한 한자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⑤전통과 현대 잇는 발판 돼야

한자 교육이 사라지면 우리 전통문화의 수많은 고전(古典)과도 단절되는 것은 물론, 도서관 장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1980년대 이전 출간 도서가 모두 사장(死藏)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이계황 전통문화연구회장은 "한자를 외국 문자로 취급하면 우리 정신문화에서 과거와 현재의 맥이 끊어지게 될 위험성이 컸는데, 초등학교 한자 교육이 그 둘을 다시 잇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