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다. 부산 국제시장은 6.25동란후 미군 PX 물건들을 들여와 수입품 전문상가로 이름을 떨쳤다. 영화 '국제시장'의 주무대는 국제시장 안에서도 수입품만 취급하는 오랜 전통의 구멍가게 '꽃분이네'다. 그런 '국제시장'이 전세계를 휩쓴 '반지의 제왕' 시리즈 6부작 최종편 '호빗:다섯군대 전투'에 역전승을 거두는 분위기다. 할리우드 대작들이 득세하던 올 하반기 국내 극장가에서 결국 마지막은 토종이 수입을 누르고 대미를 장식하는 걸까?

천만감독 윤제균이 연출하고 연기파 쌍두마차 황정민-김윤진 주연의 감동 드라마 '국제시장'은 개봉 4일만에 관객 110만명을 돌파하며 흥행 돌풍을 예고중이다. 개봉 첫 날엔 '호빗'에 박빙 차로 뒤지는가 했더니 어느새 입소문을 타고 이틀째부터 내리 3일 연속 선두를 달리고 있다.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결과에 따르면 '국제시장'은 지난 20일 하루 동안 44만 2,295명 관람으로 누적 관객수 110만 696명, 2위 '호빗'은 41만5,544명으로 누적 94만9,239명을 기록했다. 아직 예단은 힘들지만 '국제시장'의 상승 추이를 봤을 때 2014년 연말 최후에 웃는 자는 '국제시장'이 될 공산이 크다.

첫번째 이유는 프랜차이즈 블록버스터의 경우 늘 개봉 초반에 압도적인 우세를 점했기 때문이다. '아이언맨'이나 '스파이더맨'류의 수퍼히어로 시리즌 물론이고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 '호빗' 등 인기 연작물의 경우 개봉을 기다리는 대기 수요가 엄청나다. 어지간한 한국영화로는 이들 시리즈물의 초반 기세에 기가 꺾이기 마련이고 개봉 일정 조정으로 예봉을 피하는 게 충무로 통례다.

'국제시장'은 거꾸로 '호빗'과 정면 승부를 택했다. 어차피 관객층이 겹치지 않는데다 작품으로 충분히 이길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덕분이다. 개봉 당일에 불과 5천여명 오차 범위 이내의 차로 2위를 하더니 다음 날 바로 역전에 성공했다. 한국영화는 한 번 바람을 타면 외화보다 파괴력이 배가된다. '호빗'의 재역전이 힘들 것이란 분석을 하는 이유다.

둘째는 '국제시장'이 흥행 3박자와 3요소를 완벽하게 구비했다는 것이다.  감동과 웃음, 그리고 눈물이라는 3요소를 갖춘데다 연출-배우-스토리의 3박자까지 제대로다. 요즘 관객은 현명하고 지혜롭다. 눈과 귀를 현혹시키는 온갖 영화 마케팅들을 무시하고 좋은 작품을 찾아내는 데 선수들이다.

셋째는 요즘 극장가 초대박 여부를 좌우하는 결정적 그들, 중장년층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  '국제시장'은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 없는 그 때 그 시절, 오직 가족을 위해 굳세게 살아온 우리들 아버지의 이야기를 대한민국 현대사 속에 그려낸 영화다. 흥남 철수, 파독 광부, 베트남 전쟁 등에 아련한 향수를 가진 세대들은 '국제시장'을 보며 공감할 수밖에 없다.

넷째는 '국제시장'이 CJ 배급이라는 사실이다. 뛰어난 수작이고 관객 반응이 좋을 시에 CJ의 배급이란 말에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다. 안정적인 스크린 확보가 가능하고 지속력도 좋다. CJ는 이번 '국제시장'으로 올 여름 '명량'의 영광을 다시 한번 재현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편 '국제시장'은 흥남철수 때 생이별한 한 가족의 일대기를 그린 윤제균 감독의 자서전적 영화.  황정민 김윤진의 명불허전 연기는 두 말할 나위 없고 명품조연 오달수와 라미란의 코믹 열연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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