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쿠바가 53년 만에 외교관계 정상화에 나선 것에 대해 미국의 경제계와 재계 관계자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질 좋은 쿠바산 시가를 합법적으로 즐길 수 있게 됐다는 것과, 카리브해의 아름다운 섬나라로 부담없이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일반 소비자들이 단기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국교 정상화의 혜택이 될 전망이다. 야구팬들은 세계 최강 쿠바 아마추어 야구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입성이 늘어 리그 전체의 수준이 올라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양국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은 이보다 훨씬 광범위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미국인(특히 쿠바계 미국인)이 쿠바에 송금할 수 있는 금액의 한도가 현재 500달러(약 55만원)에서 2000달러(약 220만원)로 4배 늘어나게 됐다. 이는 쿠바 내수경제 활성화에 적잖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무부는 최근 자료에서 미국에서 쿠바로 송금되는 금액은 매년 20억달러(약 2조2000억원)에 이른다고 발표한 바 있다.
산업별로는 담배산업과 관광 분야에 더해 농업과 정보통신 분야도 적잖은 이익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BBC는 17일 (현지시각)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재임 중이던 2000년 쿠바에 대한 농산물 수출 제한조치가 완화됐지만 최근 들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에게 시장을 빼앗기고 있다”면서 국교 정상화로 쿠바의 미국 농산물 수입 비중이 늘 것으로 내다봤다.
쿠바는 국내에서 소비되는 식재료의 60~65%를 수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쿠바가 가진 농업분야의 잠재력을 고려하면 높은 수치다.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의 윌리엄 메시나 교수는 관련 인터뷰에서 “이번 조치로 미국산 농기계와 농약에 대한 수출 금지가 풀린다면 쿠바 농업의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쿠바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정보화 후진국’이기도 하다. 백악관이 최근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면 쿠바의 인터넷 보급률은 5%에 불과하다. 조르즈 듀아니 플로리다 국제대학 쿠바연구소장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노후화된 사회기간설비는 쿠바 경제가 안고 있는 큰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인터넷과 전화를 비롯한 통신 관련 시설 확충이 시급하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미국 통신업체의 쿠바 진출이 늘면서 관련 투자가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국교정상화를 가장 반기는 분야는 관광업계다. 쿠바는 플로리다의 최남단 키웨스트에서 불과 90마일(약 144km) 떨어져 있다. 이 때문에 1950년대에는 미국 관광객으로 넘쳐났다. 1990년대 초 ‘우방’ 소련의 붕괴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부닥친 카스트로 정부는 미국을 제외한 유럽과 남미, 캐나다 등에 여행을 자유화했다.
하지만 1961년 1월 미국과 쿠바의 국교가 단절되면서, 쿠바를 여행하고자 하는 미국인은 멕시코나 캐나다, 바하마 등을 경유해 들어가야 했다(쿠바에 가족이 있거나 취재와 구호 목적으로 방문하는 경우는 예외). 하지만 미국에서 발행된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없는데다 미국 달러 사용에 소비세까지 부과돼 여행지로서 쿠바의 매력을 반감시켰다.
미국 시카고에 본사를 둔 온라인 여행업체 오비츠(Orbitz)는 이날 배포된 성명을 통해 ”모든 미국인이 쿠바를 여행할 날이 가능하면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면서 “쿠바 여행 자유화로 인해 많은 경제, 사회, 문화적 기회들이 생겨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항공사 유나이티드에어라인도 “여행업계의 장벽을 없애기로 한 오바마 대통령의 결정에 찬사를 보낸다”고 덧붙였다.
일부 미국인들은 오히려 여행 자유화로 쿠바 주요 관광지가 ‘미국화’되면서 고유의 매력을 잃을까 봐 걱정하고 있다.
소셜미디어 분석 전문 기관인 톱시스소셜애널리틱스(Topsy’s Social Analytics)는 이날 오바마 대통령의 국교 정상화 발표 이후 불과 몇 시간 사이에 ‘쿠바’와 ‘맥도날드’라는 단어가 함께 포함된 트위터 메시지 800개가 새로 올라왔다고 전했다. 샘 스미스라는 미국인은 자신의 트위터에 “맥도날드와 피자헛이 점령하기 전에 쿠바를 다녀와야겠다”라고 썼고, ‘SPEAK’라는 대화명을 쓰는 또 다른 사용자도 “스타벅스와 맥도날드가 쿠바의 매력을 망치지 않기 바란다”고 거들었다.
이 같은 분위기에도 다수의 산업계 전문가들은 외교관계 정상화로 인한 경제효과에 대해 섣부른 기대를 경계하고 있다. 미국 자동차 전문 평가기관인 켈리블루북의 미셸 크렙스 시니어 애널리스트는 시카고트리뷴과의 인터뷰에서 “쿠바 사람들이 자동차를 비롯한 미국 공산품을 좋아할 것은 분명하지만 구입 기회가 늘어나는 것일 뿐 지불 능력이 따라서 올라간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면서 “국교 정상화는 작은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에 앞서 17일 백악관에서 연설을 통해 미국과 쿠바는 외교 관계를 다시 수립하고 경제와 여행 제한을 크게 완화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쿠바와 관련한 낡은 접근법을 끝낼 것”이라고 말해 반세기 이상 유지해 온 대쿠바 봉쇄정책이 실패했음을 시인했다.
비슷한 시간 라울 카스트로 쿠바 대통령도 대국민 TV 연설을 통해 국교 정상화를 선언하며 “인권문제와 외교정책 등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가 남아있지만 미국과 쿠바 양국 모두 차이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수개월 내에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대사관을 다시 개설하는 한편 양국 고위급 인사 간 교류와 회담을 본격적으로 준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