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서울 중구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대회의실. '40년 만의 가족 상봉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란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 앞에 윤정미(44)씨가 섰다. 네 살 때 가족 품을 떠난 윤씨가 40년 만에 가족을 만나는 자리였다. 어느덧 두 아이 어머니가 된 소녀는 '엄마'라는 말을 끝내 내뱉지 못하고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울기만 했다. 딸의 부름을 기다리다 못한 어머니가 다가왔다. "너를 찾으려고 얼마나 헤매고 다닌 줄 아느냐. 살아있어 줘서 고맙다. 못 찾아서 엄마가 미안해. 어렸을 때 얼굴 그대로야." 어머니 최순자(70)씨는 딸 얼굴을 어루만지다 바닥에 주저앉았다. 모녀는 부둥켜안고 10분을 통곡했다.
전남 해남에 살던 정미씨는 네 살 때인 1974년 언니 이정옥(48)씨와 함께 경기도에 있는 큰아버지 댁으로 갔다. 가난 때문이었다. 어머니 최씨는 "사정이 나아지면 데리러 오겠다"며 두 딸을 맡겼다. 1972년 남편이 사망하고 혼자 힘으로 4남매를 키울 형편이 못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아버지는 살림이 어려워지자 8개월 만에 서울의 한 가정에 정미씨를 보냈다. 이후 8년 만에 딸을 찾으러 온 어머니는 다른 친척 집에서 언니 정옥씨를 찾았지만, 정미씨는 못 찾았다. 서울 집에서 버림받은 정미씨의 행방을 찾을 도리가 없었다. 정미씨는 서울에서 전남 구례의 한 노부부 집에 보내져 양녀가 됐다. 양아버지는 정미씨에게 '윤'이라는 성을 주고 호적에 올렸다. 양부모 보살핌 아래 고등학교를 졸업한 '윤정미'는 서울에 직장을 잡았고, 결혼해 가정을 이뤘다. 가족사진 한 장 없는 정미씨에겐 어머니와 언니에 대한 기억만 남았다. 어릴 때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던 5월이 제일 싫었고, 커서는 명절에 부모·형제를 만나는 사람이 부러웠다고 한다.
정미씨는 "'혹시 가족이 날 버린 것 아닐까' 하는 마음에 그동안 선뜻 가족을 찾아나서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두 아이 엄마가 되고 나서 점점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커졌다. '외할머니, 이모, 외삼촌이 있었으면 아이들을 정말 예뻐했을 텐데'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작년 정미씨의 사정을 아는 시댁 형님은 "너랑 아주 닮은 분이 있는데 그분도 동생을 잃었다고 한다. 혹시 만나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사설 병원에서 두 차례나 유전자 검사를 했지만, 결과는 아니었다. 정미씨는 "그 일을 계기로 친언니가 날 기억한다면 나를 애타게 찾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곧바로 경찰에 실종자 유전자 등록을 했다.
어머니 최씨는 막내딸을 찾기 위해 6년 전 방송에 출연했고, 지역 신문에 수차례 광고도 내봤지만 모두 허사였다고 한다. 최씨는 지난 10월 "유전자 대조를 통해 실종된 가족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을 접한 정옥씨의 제안에 밀양경찰서로 가 유전자를 등록했다. 보건복지부 위탁을 받아 실종 아동 전문 기관을 운영하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경찰에 등록된 유전자 정보를 국과수에 의뢰해 모녀의 친자 관계를 확인했다. 15일 나온 최종 결과에서 모녀일 확률은 99.9%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