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차 갑오년(甲午年) 10월 11일. 오늘 경남기업은 이곳 검단산에서 정성을 모아 단군조상님, 백두대간 산신령님, 검단산 산신령님, 이 땅의 모든 선한 제신과 천지신명님께 제(祭)를 올리오니 부디 저희의 정성을 받아주옵소서…."
지난 10월 11일 경기도 하남 검단산 정상 인근 헬기장. 경남기업 건축영업팀과 건축기술팀 직원 20여명은 돼지머리와 시루떡으로 차린 고사상에 큰절을 올렸다. 오랫동안 준비해온 큰 공사 입찰(10월 13일)을 앞두고 지낸 수주(受注) 기원제다. 직원들은 축문(祝文)에서 "한 건 한 건 입찰에 열과 성의를 다하겠사오니, 모든 공사를 수주할 수 있도록 간절히 기원하오니 부디 소원을 이루게 하옵소서"라고 기원했다.
입찰을 하루 앞둔 10월 12일에는 전략영업팀 직원 10여명이 충남 공주 계룡산 남매탑을 찾아 고사를 지냈다. 남매탑은 오누이의 지극한 불심을 기려 지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으로, 건설사들이 수주 기원제를 많이 올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로부터 한 달 후 경남기업은 LH가 발주한 세종시 행정중심복합도시 3-3생활권 M6블록 LH아파트 공사 4공구의 최종 낙찰자로 선정됐다. 금액은 1121억원으로, 경남기업의 지난해 매출 11%에 해당하는 '대박'이었다.
건설업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건설사들이 전국 유명 산을 찾아 공사를 많이 수주하게 해달라는 고사를 지내고 있다. 건설사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강화도 마니산. 동부건설, 한양 등이 올 초 마니산에서 수주 풍년을 기원했다. 대림산업 플랜트사업본부도 수십년 동안 마니산에 올랐다.
백두대간의 중추 산인 태백산, 서울의 주산(主山)인 북한산, 이성계가 꿈에서 산신(山神)으로부터 왕이 될 증표인 금척(金尺·금으로 된 자)을 받았다는 전북 진안의 마이산 등도 인기다. SK건설이 올 초 검단산에서 수주 기원제를 올린 이후 실적이 크게 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산이 업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대우건설은 바위와 봉우리가 많아 '양기'가 강하다는 북한산과 경사가 완만하고 높지 않아 '음기'가 강하다는 청계산에서 번갈아가며 수주 기원제를 올리고 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양기나 음기 한쪽이 강하면 융합과 조화가 되지 않기 때문에 음양 궁합을 맞추기 위해 북한산과 청계산을 번갈아 오른다"고 했다. 그는 "입찰을 앞두고 해당 부서 직원들은 개고기는 절대 먹지 않는 대신 착착 달라붙어서 수주 잘되라고 낙지를 많이 먹고, 팀장급들은 인근 절에 가서 기도를 하기도 한다"고 했다.
GS건설은 지난해 초에는 강화도 서쪽 석모도의 낙가산, 올해는 경기도 군포 수리산에서 수주·안전 기원제를 지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두 산 모두 기도발이 좋고 기(氣)가 센 곳으로 좋은 기운을 받기 위해 선정했다"며 "센 기로 경쟁자를 누르자는 의미"라고 했다.
건설협회 관계자는 "건설공사 입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최저가 낙찰제나 적격 심사제 등에서 낙찰을 받기 위해서는 상당 부분 운(運)이 좌우하는 경우가 많아 이런 입찰을 '운찰'이라 부르기도 한다"며 "건설사들은 중요한 입찰을 앞두고 임직원들의 정성을 모으고 심리적 압박감도 덜기 위해 수주 기원제를 지내는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