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여섯 사람 때문에…. 차암~ 나쁜 사람들이에요~. 그렇지만…."

김성수(金性洙·84) 주교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더니 갑자기 허리를 90도로 꺾었다. 앞자리에 앉은 초로(初老)의 사제들도 엉겁결에 벌떡 일어나 맞절을 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6일 저녁 서울 정동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은 잔치마당이었다. 사제서품 50년 금경축(金慶祝)을 맞은 김 주교와 임승룡 신부, 25년 은경축(銀慶祝)을 맞은 김준배 안봉식 천용욱 이정호 김영회 전석달 사제를 축하하는 자리였다.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겠습니다." 사제서품 50년(금경축)을 맞은 성공회 김성수(가운데) 주교를 비롯해 금경축과 은경축을 맞은 사제들이 축하 떡을 자르고 있다.

김 주교는 성공회의 김수환 추기경 같은 존재다. 강화도 유지 집안 출신인 그는 청년 시절 폐결핵을 앓으며 죽음을 목도한 후 사제로서의 삶을 결심했다. 신학생 시절 탄광촌 봉사를 자원했던 그는 서품 후에도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을 찾아가 다독이고 위로했다. 김 주교의 삶을 보면서 많은 이가 성공회 사제의 꿈을 키웠다. 이날 은경축을 맞은 여섯 명도 그런 경우였다.

당초 김 주교는 이런 자리를 말도 못 꺼내게 했다. 대신 자신의 형제, 집안 사람들과 함께 10년간 매년 1억원씩 모두 10억원을 성공회대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강화도 땅 등 유산을 내놓은 것이다. 그걸로 금경축을 때우려 했지만 1989년 김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은 '은경축 6인방'은 스승의 뜻을 거역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날 축하행사에선 감사, 은혜, 보람, 십자가 등의 단어와 웃음꽃이 강물처럼 넘쳤다.

우선 내빈 소개부터 달랐다. 사회자 유시경 신부는 먼저 "오늘 금경축 맞은 두 분을 50년 전부터 아시는 분?" 하고 물었다. 사제와 신자 대여섯 명이 손을 들었다. 박수. "다음은 은경축 된 분들을 25년 전부터 아셨던 분?" 또 사람들이 일어섰고, 박수를 주고받았다.

금경축 행사에 참석한 일본의 한 주교는 즉석 축사를 통해 "사제로서 가장 큰 세 번의 은혜는 정년퇴임, 금경축 그리고 별세다. 감격스럽다. 사람들이 예수님더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해도 내려오지 않으셨다. 여러분도 무슨 일이 있어도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김 주교는 "때론 하느님께 '언제까지 이렇게 건강하게 내버려두실 거냐'고 막 대들기도 한다. 하지만 하느님이 원치 않으셔서 아직도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고 이렇게 오래 사는 것 같다. 앞으로도 안 내려오겠다"고 했다. 임승룡 신부는 "6·25 때 피란 내려와 수원비행장 주변 쓰레기통에서 버린 음식 먹으며 살아남았다. 그때 이후로 내 삶은 길에 버려진 과일, 버린 음식을 먹으며 사는 것이었다. 감사하다"고 했다.

은경축 사제들도 답사에 나섰다. 늦은 나이에 사제가 된 김준배 신부는 "얼마 전 정년 은퇴했다. 제가 금경축 되려면 91세가 된다. 오래 살아서 금경축도 맞겠다"고 해 박수를 받았다. 이정호 신부는 "25년 전 이 시간쯤에는 워커힐 휘황한 조명 아래서 뷔페를 먹었다. 그 몇 시간 전에는 성생원에서 한센인들과 만나 사제로서의 삶을 다짐했다. 지난 25년은 그 휘황한 조명과 을씨년스러운 성생원 둘 사이 어디쯤에서 왔다갔다한 시간이었다. 다시 새롭게 시작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