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 흑인을 살해한 백인 경관에 대해 연방대배심 두 곳이 모두 불기소 처분을 내리자, 미국 사회에서 제도 개혁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누군가가 법에 따라 공정하게 대접받지 못한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문제"라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대통령으로서 나의 의무"라고 말했다. 이미 백악관에는 제도 개선 태스크포스가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차기 유력 대권 주자로 꼽히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미국 형사제도가 균형을 잃었다(out of balance)"며 "(이번 사태에 대한 반성·논의가) 우리가 다시 하나가 돼 균형을 찾는 기회로 작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흑인 에릭 가너를 목졸라 숨지게 한 백인 경찰의 불기소 결정에 대한 항의 시위가 미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4일(현지 시각) 애틀랜타 시위에 참가한 여성이 가너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자 시위 구호가 된 ‘숨 쉴 수 없다(Can’t breathe)’라고 쓰인 글귀를 들고 있다.

의회 차원에서도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 출신인 그레고리 믹스 연방하원 의원은 "공화당에서도 우리의 사법체계가 흠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며 "의회가 나서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흑인 의원은 "대배심 제도가 지나치게 검사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며 "경관과 밀접하게 일하는 검사는 이런 사건이 당연히 기소가 안 되게 배심원단 내 여론을 몰아간다"고 지적했다.

13세기 영국에서 시작돼 미국이 가장 활발하게 활용하는 배심제는 무작위로 선출한 일반 국민이 배심원단을 구성해 유·무죄나 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제도다. 여러 명의 뜻을 모아 판단하기 때문에 합리적 결정을 한다는 장점도 있지만, 법률 전문성이 없어 여론이나 심리를 주도하는 검찰에 의존하기 쉽다는 단점이 있다. 마이클 브라운 사건에서 검사가 경관의 주장에 일절 반박하지 않은 채 혐의가 없다는 목격자들의 증언만 뒷받침했고, 경관의 증언과 충돌하는 목격자에 대해서는 반대신문을 많이 한 것이 대표적이다.

총에 맞아 숨진 마이클 브라운과 '목조르기(chokehold)'로 숨진 에릭 가너 측은 대배심 구성부터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흑백 갈등을 다루는 사건에 백인 배심원이 더 많았고, 구체적 증거에 따른 결정도 아니라는 것이다. 브라운 가족 측은 담당 검사인 세인트루이스 카운티의 로버트 매컬러크가 경찰관 집안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검사 교체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편 백인 경관 불기소에 항의하는 시위는 4일 뉴욕·보스턴·워싱턴·시카고·LA 등 미 주요 대도시로 확대됐다. 뉴욕시에서는 전날에 이어 타임스스퀘어와 브루클린 다리 등 20여곳에서 수백명씩 동시 다발 시위를 벌였다. 특히 브루클린 다리 등 맨해튼과 주변 도시를 연결하는 주요 교통 거점이 1~2시간씩 폐쇄됐다. 일부 시위대는 도로 바닥에 죽은 듯 드러눕는 '다이 인(die in)' 퍼포먼스를 11분간 벌였다. 11분은 에릭 가너가 질식사하기 전 "숨을 쉴 수 없다(I can't breathe)"고 호소하며 바닥에 누워 있던 시간이다.

백인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일부 백인은 트위터에 '인종차별 항의' 계정을 만들어 '백인에게만 관대한 처분' 사례를 올렸다. 만화가인 조엘 왓슨은 "14세 때 좀도둑질을 했지만, 화목한 백인 가정으로 비쳤는지 그냥 풀려났다"고 했고, 경찰 저지선을 뚫었는데 백인인 자신은 놔두고 흑인만 덮쳤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런 가운데 애리조나주(州) 피닉스에서 또 백인 경관이 차량 안에서 마약을 팔던 비무장 상태의 흑인 남성 루메인 브리즈번(34)을 몸싸움 끝에 사살하는 사건이 일어나 또 다른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흑인 인권운동가들은 오는 13일 워싱턴DC에서 '경찰 폭력에 항의하는 전 국민 행진'을 갖겠다고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