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전문가들은 오랫동안 '세계의 공장'으로 군림하며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성장을 거듭해온 중국은 그 자체로 '거대한 디플레이션 요소'라고 주장한다. 상하이 난징동루의 쇼핑가

세계 경제에 유럽과 중국발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속 경기침체)의 어두운 그늘이 드리우고 있다.

유로화를 단일통화로 사용하는 유로존 18개국의 소비자물가는 11월 한 달간 0.3% 올라 10월의 0.4%보다 낮았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인플레이션 목표치인 2%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여기에 더해 유로존의 주 교역국인 폴란드와 헝가리는 올 들어 여러 달 소비자물가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해 이미 디플레이션에 돌입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업률이 높게 유지되며 경기가 활력을 잃고 있는데다, 국제유가가 올해 들어서만 40%나 폭락한 것도 소비자 물가 하락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유가가 떨어지면 항공사와 석유화학업체 등 관련 기업의 비용이 절감되는 것은 물론 일반 가정에서도 절감된 유류비가 소비 증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경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이다.

스탠리 피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부의장은 4일(현지시각) 이탈리아 일간 라 레푸블리카와 가진 인터뷰에서 디플레이션에도 좋은 디플레이션과 나쁜 디플레이션이 있다”면서 “유가 하락은 소비자를 부유하게 해줘 경제 성장에 보탬이 되기 때문에 좋은 디플레이션과 연관되어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경기부양 효과가 높은 실업률로 인한 만성적 내수 부진에 시달리는 유로존 경제를 살릴 수 있을지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유럽연합(EU) 통계청인 유로스탯이 10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유로존 18개국의 10월 평균 실업률은 11.5%로 9월과 같았다. 독일은 4.9%, 프랑스는 10.5%였지만 스페인은 24%, 그리스는 26%로 매우 높았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유럽중앙은행이 국채매입 등 양적완화 조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 외에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데 대부분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드라기 총재는 그러나 4일(현지시각) 프랑크푸르트 ECB 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존 통화정책의 성과를 평가하는 작업은 내년 초에 이뤄질 것”이라고 말해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유럽만큼 눈에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중국의 물가 하락이 세계 경제에 더 큰 위협이 될 것으로 보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일부 전문가들은 오랫동안 ‘세계의 공장’으로 군림하며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급성장을 거듭해온 중국이 존재 자체로 세계 경제에 ‘거대한 디플레이션 요소’라고 주장한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2002년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이유를 들어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반대하기도 했다.

문제는 중국의 생산물가가 3년 가까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데다 주요 선진국의 구매력 감소가 이어지면서 제조시설 확장에 주력해온 중국 기업들에 상당한 가격 하락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이 적극적으로 가격 하락에 나서면 전 세계 많은 기업의 경영환경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는 설명이다.

프랑스계 투자은행 소시에테제네랄의 시장 전략가 알버트 에드워즈는 이러한 이유로 “유로존 경제에 (디플레이션 관련)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말 큰 문제는 중국”이라고 지적한다.

중국이 아직 7%대의 경제성장을 이어가는 만큼 디플레이션 우려는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중국 인민은행이 2012년 이후 처음으로 지난달 기준금리를 인하를 단행한 배경을 두고 중국 정부가 디플레이션 압박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증거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13억 거대시장이 경기침체에 돌입할 경우 세계 경제에 미칠 파문은 엄청날 것이기 때문에 선제 대응이 필요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섣부른 대응으로 중국 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을 증폭시켜 좋을 것도 없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