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우리나라의 몇 안 되는 젠체하지 않는 지식인이다. 그는 언제나 책상머리에 앉아 있기보다 나가서 놀기를 주창해 왔고 여가가 주는 창의적인 측면을 강조해왔다. , , 등 신선하고 발칙한 저서들은 매번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랐음은 물론이다. 그런 그가 3년 만에 신간을 들고 찾아왔다. 제목은 . 그는 이 단어를 ‘편집학’이라고 명명한다. 정보와 정보를 잇고,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편집이야말로 창조의 밑거름이라고 말이다.
전작들과는 좀 다른 성격의 신간이 나왔습니다. 다소 학문적인 주제인데, 교수님답게 딱딱하지 않고 재밌게 풀어주었어요. 내가 쓴 것 중에 제일 잘 썼어요. 그래도 주제가 지금까지 내 독자들이 보기에는 '이 사람 뭐지?' 할 수 있는 주제라… (다소 걱정이 되죠).
책 서론에 '책을 쓰는 내내 즐거웠다. 앎이 주는 흥분을 오십이 넘어서야 느낀다'고 했어요. 확실히 전과 달라졌어요. 지금까지 쓴 책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콘텐츠 중 아주 사소한 부분들이고, 이 책은 내가 여태까지 항상 생각해온 주제를 정리한 거예요. 내가 쉽고 재밌게 쓰니까 지식인 사회에서 나를 아주 허접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아. , 이딴 거 쓰니까 나를 아주 허접하게 봐. (좌중웃음) 그래서 되게 화가 나지. 내가 공부 되게 많이 한 사람인데 말이야. 어쨌든 이번엔 내가 진짜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고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었어요. 어려운 얘기를 쉽게 쓰는 게 어떤 식으로 가능한지를 실험해본다는 의미도 있고요.
기존에도 책이나 칼럼을 통해 창조를 꾸준히 강조해왔어요. 그리고 이 책에서 여전히 창조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요. 창조라는 단어가 아주 유행어처럼 돼버렸는데, 창조의 개념에 거품이 있어요. 무슨 얘기냐면, 사람들은 창조를 신비화해요. 창조가 중요하다고 얘기하면서 보통사람들은 창조를 못할 것처럼 얘기한다는 거죠. 예를 들면 스티브 잡스니 레오나르도 다 빈치니 하는 아주 위대한 사람들만 들먹이면서 '너희들은 창조할 수 없다'고 하는 거예요. 마치 창조를 보통 사람들과 구분되는 개념으로 만든다는 거죠. 그 거품을 빼고 싶었어요. 21세기에는 누구나 천재가, 창조적이 될 수 있다고요.
그 방법으로 편집의 기술을 들었어요. 자기 나름의 독특한 편집 기술을 익히게 되면 누구나 창조적이 될 수 있어요.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어요. 아무 근거 없이 뭐가 툭 튀어나오는 게 아니거든. 다 있는 거 편집해서 나오는 거예요.
그 편집의 달인으로 PD나 감독을 언급했죠. 그중 하나가 김태호 PD가 만드는 의 자막이었고요. 한 프로그램이 그렇게 오랫동안 인기를 유지하는 게 상당히 예외적인 경우거든. 그래서 가만 보니까 자막이 특별하더라고. 철저히 자막의 기술이에요. 의 자막과 다른 예능의 자막을 비교해보면 의 자막이 탁월해요. 그러니까 김태호 PD라는 사람은 PD이면서 동시에 훌륭한 자막 처리자이지.
편집은 이 정보와 저 정보를 연결하는 일종의 짜깁기예요. 연재 중인 칼럼에서도 전혀 다른 두 가지를 접목하는 경우가 많던데요. 맞아요. 이 얘기하고 저 얘기가 전혀 다른 얘긴데 둘을 갖다 붙이면 재밌어져요. 말도 안 되는 걸 갖다 붙이는데, 갖다 붙이면 다 말이 돼. 갖다 붙이는 것도 실력이에요. 내가 그 칼럼( 연재 칼럼) 쓰면서 글 쓰는 방식이
많이 달라졌어요. 그림을 그리니까 많이 바뀐 거 같아. 그래서 예술을 하는 게 참 중요해요.
외롭지만 풍요로운 일본 생활
그는 2007년 이라는 에세이를 낸 적이 있다. 도쿄 교환교수 시절의 일들을 일기처럼 풀어낸 이 책을 보면 그가 얼마나 일본문화에 애정과 관심이 큰지 알 수 있다. 3년 전 돌연 일본으로 떠난 것은 그래서 어쩌면 당연하다. 약간의 외로움을 차치하면, 일본화를 배우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단다.
공부가 50대 들어 더 재밌게 느껴진다는 건 일본에서의 그림 공부가 한몫한 건가요? 내가 3년 전에 교수를 그만뒀어요. 그 당시 오십을 앞두고 내 나름대로 굉장히 절박한 상황이었거든. 사람들은 내가 베스트셀러 저자에 대학교 교수에 잘나간다며 나를 부러워했지만, 나는 그게 내 인생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계속 소진된다는 느낌이 들었죠. 만날 똑같은 얘기 하고 다니는 것도 불만족스러웠고, 방송에 빠져들며 그걸 즐기고 있는 나 자신도 스스로 생각할 때 좀 우스웠고요. '뭐 하자는 거지? 100살까지 살 건데 이런 식으로 해서 100살까지 살 수 있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절박함 때문에 일본으로 도망을 간 거예요. 그랬더니 별의별 소문이 다 돌아. 내가 무슨 학교에서 쫓겨났다는 둥, 여자 문제가 있어서 도망갔다는 둥. (좌중 웃음) 아무튼 나로서는 되게 절박한 상황이었고, 고민 끝에 나머지 인생 50년을 내 맘대로 살겠다며 교수직을 그만두는 무모한 결정을 내렸어요.
집에서 반대하진 않았어요? 사방에서 다 반대하고 그랬죠. 나도 많이 후회하고요.
후회하세요? (교수직을 그만둔) 그 당시에는 나도 앞이 캄캄하니까. 사람들은 내가 되게 용감한 줄 아는데 난 되게 겁이 많은 사람이에요. 용감한 결정을 내린 이유는 정말 무서워서, 겁에 질려서 그냥 확 질러버린 거예요. 그러고 나서는 '이거 뭐지? 내가 뭔 짓을 한 거지?' 만날 그러지. (좌중 웃음) 근데 결국은 그런 무모한 결정들이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무모한 결정 끝에 그림을 배우게 된 거고요. 내가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은 교수를 그만두고 그림을 공부한 거예요. 아까 잠깐 언급했지만 예술을 한다는 건 정말 중요해요. 창조라는 건 미학적인 거거든. 흔히 말하는 '창조경제'가 안 되는 이유는 창조를 경제학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에요. 창조는 미학이야. 내가 그림을 그리면서 미적인 경험들이 축적되니까 편집의 범위가 말도 못 하게 넓어져요. 논리적인 사고라는 건 좁은 바운더리 안에서의 순환논법이라 새로운 게 나올 수가 없는데, 창조는 이걸 뛰어넘는 거거든. 근데 이건(창조) 철저하게 미학적 경험에서 나오더라고요. (그림이) 나머지 인생을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기반이 된 것 같아요.
(교수를 관두면서) 물적 손해 대신 지적 풍요를 얻었네요. 돈이 아무리 많아도 불행한 사람은 내 주위에도 너무 많아요. 물론 최소한의 돈은 있어야 되지. 그 최소한의 돈이 얼마인가 생각해보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아요. 내 기준으로 자가용까지는 있어야 돼요. 근데 10년 전 소나타를 타는 거나 벤츠를 타는 것에는 큰 차이가 없죠.
다 본인의 만족이죠. 그래도 벤츠랑 소나타는 차이가 큰데.(웃음) 자가용이 있으면 원할 때 바닷가에도 갈 수 있잖아요. 근데 소나타를 타고 가나 벤츠를 타고 가나 티코를 타고 가나 간다는 데는 별 차이가 없어요. 물론 기본적인 삶의 조건은 갖춰져야 한다는 걸 부정하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내가 티코가 됐든 소나타가 됐든 자가용이 있으면, 그다음부터는 '어떻게 하면 내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을까' 생각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행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미학적 경험들이라는 거죠. '가을이 아름답구나', 하고 돌아볼 수 있는 여유와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고요. 더 중요한 건 공부하는 거예요. 영어, 수학만 공부하니까 문제지, 자기가 좋아하고 관심 있어 하는 것들을 공부하면 정말 재밌어요.
원래 일본에서 만화를 전공하려다가 일본화를 선택했다고 들었어요. 근데 일본화가 정말 재밌어요. 내가 칼럼에 그리는 그림도 다 일본화예요. 이게 사진으로 찍으니까 후져 보이지, 크기가 이만하고 (재료가) 다 돌가루야. 그리고 또 내가 너무 잘 그려. 왜 잘 그리느냐면 재료값이 비싸. 이 돌가루 재료가 요만큼에 20만~30만원씩 해. 다른 학생들은 비싸니까 수채화처럼 아주 연하게 칠하는데 나는 그게 성질에 안 맞아서 이만큼씩 막 발라요. 아무도 그 비싼 물감을 그렇게 바르는 사람이 없어. 나만 그렇게 발라. (좌중 웃음)
보니까 그림마다 화풍이 전부 다 다르더라고요. 내 문제가 뭐냐면 화풍이 없어. 너무 빨리 바뀌어. (좌중 웃음) 나는 화가로 대성할 마음도 전혀 없으니까 내 맘대로 그리는 거지 뭐. 내가 하고 싶은 건, 내 글과 그림이 잘 맞아 들어가서 논리적인 비약들이 미학적 체험으로 다가오는 글을 쓰는 거예요. 누구도 그렇게 쓴 사람이 없거든. 새로운 글쓰기의 방식이라고 봐요. 아무도 한 적 없는 방식이죠.
일본에는 언제까지 있을 예정이에요? 내가 요새 인터뷰를 하면서 실수를 많이 하는 게, 뻥을 너무 많이 쳤어. 인터뷰하면 다들 언제까지 있을 거냐고 물어보잖아요. 근데 '너무 외로워서 조금만 있다 돌아올 거예요'라고 얘기하면 너무 쪽팔리잖아요. 사실 너무 외로워서 2월에 돌아오려 그랬거든요? 책도 나오고 해서….
3년이면 충분히 오래 있었죠. 오래 있었어요. 나 진짜 힘들어. 이 나이에 혼자 3년 있어 봐. 다들 날 부럽다고 그러는데, 그럼 '네가 와서 한 번 해봐' 그래. (좌중 웃음)
책에 보니 일본에서 산책을 그렇게 즐긴다던데…. 산책은 개뿔! 하여튼 돌아오고 싶다고 하면 쪽팔리니까 언제 들어올 거냐고 물으면 2~3년 더 있을 예정이라고 거짓말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실은 굉장히 힘들어. 딜레마에 빠졌어.
“자녀교육? 나 역시 시행착오 겪어”
확장적 사고를 위해 노는 걸 그토록 강조해온 그가 집에서는 과연 어떤 아버지였을지 궁금했다. 그런데 뜻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기대만큼 똑똑하지 못한 아들이 속상했고, 왜 성적표를 내놓지 않느냐며 다그치기도 했단다. 아이의 삶은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 후로 시간이 조금 지나서였다.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을 쭉 강조해온 교수님의 경우 자녀교육을 어떤 식으로 했는지 궁금해요. 다 시행착오를 겪어요. 내가 우리 큰놈 공부 못하는 걸 받아들이는 데 3년이 걸렸어요. 성적이 나쁜 걸 자꾸 숨기고 속이는 게 못마땅해서 야단을 치고 그랬더니 이놈이 결국은 사고를 치더라고요. 학교 유리창을 깨고 정학을 두 번이나 당하고 가출을 하고 그랬어요. 내가 아무리 심리학 이론적으로 뛰어난 생각을 해도 일상에서의 문제는 누구나 똑같거든. 그 이후에 내 생각, 내 삶의 방식이 많이 바뀌었어요. 지금은 '네 삶을 살아라'가 내 핵심이에요. 지금은 멋있게 잘 컸어요. 근데 요샌 우리 둘째가 정학을 두 번씩 당해가지고…. (좌중 웃음)
둘째는 몇 살인데요? 고1. 하긴 나도 고등학교 때 정학을 2번이나 당했으니까요. 우리 집은 정학이 최소 2번씩이야. 내가 우리 어머니한테 우리 아들들 얘기를 하니까 너무 고소해하시는 거야. 똑같이 당하니까 너무 고소해하시더라고.(웃음)
어떻게 하면 정학을 당하죠? 나는 싸워서 당했어요. 요란하게 학창시절을 보냈지. 어쨌든 애들이 자라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는 건 당연한 거예요. 아이는 당연히 주의가 산만할 수밖에요. 재미있게 살고 싶은 건 인간의 본능이고 아이는 철저하게 재미만 추구하는 존재니까요. 근데 애한테 주의가 산만하다고 그걸 정신병(ADHD)으로 보면 어떻게 하냐고. 애한테 가장 필요한 것은 아이에 대한 부모의 신뢰예요.근데 부모가 불안하면 애를 신뢰하지 못하거든요. 가장 큰 문제는 부모의 불안이에요. 근데 부모가 정말 아이의 미래를 걱정해서 불안하
냐 하면 그것도 아니야. 자기 삶이 불안하니까 자신의 불안을 애한테투사하는 거죠.
평소 자녀와 대화는 자주 하는 편이세요? 친구처럼 대화해요. 이젠 애들이 다 커서 아주 좋아. 같이 영화도 보고 낚시도 가요. 지난 추석 때는강원도에 가서 낚시를 했는데 너무 좋았어요. 영화 (낚시를 즐기는 아버지와 아들들의 이야기) 알아요? 그 느낌이었어. 우리나라에서는 하라는 공부 잘해서 대학 잘 가는 게 성공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조급해하는 부모들이 많은 것 같아요. 미래엔 그렇지 않아요. 걔네들이 어른이 됐을 땐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잘나가고 행복한 게 아니에요. 철저하게 주체적인 관심이 있어야 된다는 말이죠. 자기 삶의 주제가 뭐냐는 얘기야. 우리 아이들이 자기만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용기를 가지게 해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에요.
요즘 교수님의 주 관심사는 뭐예요? 이 책이 끝나면 바우하우스에 대해 쓰려고 생각 중이에요. 인류 최초의 편집학교거든요. 방학 때마다 가는데 나이가 들수록 유럽에 가면 음식이 안 맞아. 어쨌든 한국 사람은 김치를 먹어야 돼. 내가 옛날에 그런 말 하는 사람 되게 무시했거든? 근데 내가 나이가 드니까 (김치 없으니까) 힘들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