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일본 도쿄대 의대 중퇴생 고니시 다카히로(小西隆裕)는 '세계 동시 혁명'의 전진기지를 만들겠다며 항공기 요도호를 납치, 북한에 망명했다. 일본을 뒤흔든 첫 비행기 납치 사건이었다. 사건이 일어난 지 44년이 지나 70세가 된 그는 일본 매체 인터뷰를 통해 "북한에 망명한 것은 세계혁명을 위해 훈련을 받기 위한 일시적 체재가 목적이었다"면서 귀국을 희망했다.

비행기를 납치했던 고니시 등 '적군파' 9명 중 현재 4명이 북한 평양에 살고 있다. 이들은 최근 트위터를 개설, "일본에 돌아가는 것이 행복해지는 길" "일본이라는 국가와 민족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는 글을 올리고 있다.

이들의 꿈은 이제 '혁명'이 아니라 '일본 귀국'이다. 이들이 귀국을 원하는 것은 자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납치범 9명 중 8명이 평양에서 일본 여성과 결혼했다. 고니시는 범행 전 사귀던 일본 여성을 평양으로 불러 결혼했고 자녀 2명이 있다. 그러나 부인과 자녀는 2002년 귀국했다. 다른 납치범의 자녀 18명도 모두 귀국했다. 자식들은 일본인으로 살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들은 가족들에게 "여생을 감옥에서 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귀국하고 싶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1980년대까지도 혁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실제 1970년 항공기 납치 사건 당시 16세 고교생이었던 시바타 야스히로(柴田泰弘)는 1985년 일본에 밀입국해 활동하다 체포됐다. 그는 경찰에서 "나의 직업은 혁명가이다. 혁명을 위해 자금과 동지 규합을 목적으로 일본에 입국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5년 형을 살고 출옥, 가족과 연락을 끊고 외로운 생활을 하다 2011년 병사했다. 그는 생전에 "내 사상의 잘못을 알았다.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면 인생이 바뀌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들은 위장 여권을 활용, 1980~ 1983년 스페인·영국 등 유럽에서 활동하면서 일본인 남녀 3명을 납치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일본 경찰은 "요도호 납치범들이 활동 동조자와 결혼 대상 일본 여성을 구하기 위해 유럽에서 납치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일본 경찰은 요도호 납치범들을 결혼 목적 유괴 혐의로도 국제 수배 중이다.

이들은 현재 평양의 일본인 마을에 집단 거주하고 있으며 북한 정부의 지원으로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에서 사망한 납치범 3명의 경우, 사인이 불명확해 탈북하려다 사형당했거나 강제수용소에 감금됐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공산주의 혁명을 꿈꾸던 일본 엘리트가 개인숭배를 강요하는 나라에 적응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이 이들의 귀국을 허용할지는 의문이다. 북한은 요도호 납치범들이 유럽 일본인 납치와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북한 특별조사위원회는 일본 정부의 요청을 받아 11월 요도호 납치범을 상대로 유럽 일본인 납치 사건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고 3일 교도(共同)통신이 전했다. 북한이 이들의 트위터 개설을 허용한 것도 납치 문제에 대한 일본의 반감을 줄이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들은 "일본인 납치와 우리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내용을 수시로 트위터에 올리고 있다.

☞요도호 납치 사건

일본 극좌파 '공산주의자동맹 적군파'(적군파) 9명이 1970년 3월 31일 하네다공항발·후쿠오카행 일본항공 '요도호'를 납치했다. 이들은 세계혁명을 일으키기 위한 '기지 건설'을 목적으로, 납치한 항공기로 북한에 망명했다. 당초 일본 정부는 납치범들에게 "평양으로 간다"고 속인 뒤 요도호를 김포공항에 착륙시켜 범인 체포 작전을 펼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납치범들이 이를 눈치채자 협상을 통해 김포공항에서 승객을 석방하는 대신, 일본 국회의원이 인질로 북한까지 동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