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시에 사는 홍계향(81) 할머니는 지난 6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경기지회를 찾아 5억5000만원 상당의 4층짜리 집을 유산 기부하기로 약정했다. 이 집은 할머니가 평생 노점상, 지하철 청소, 공장 근로 등을 하며 모아 장만한 전 재산이었다. 홍 할머니는 평소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가 딸이 2010년 질병으로, 치매를 앓던 남편마저 지난해 말 사망하자 미리 재산 기부 절차를 밟았다.

홍 할머니처럼 현금이 아닌 부동산·증권·보험 등 비현금 자산을 기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공동모금회에 유산 기부한 사람 53명 중엔 자신의 부동산을 "내가 죽으면 좋은 일에 써달라"며 내놓은 사람만 34명 있다. 이들 부동산 기부자들이 낸 모금액은 총 52억4400만원으로 규모도 적지 않다.

채권·보험 등을 기부하는 사람도 있다. 광주광역시에 사는 68세 여성은 지난해 아너 소사이어티(공동모금회에 1억원 이상 기부하기로 약정한 사람들의 모임) 회원으로 가입한 뒤 "다른 재산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고 싶다"며 지난해 7월엔 3547만원 상당의 은행 채권까지 선뜻 기부했다. 또 2010년 아너 회원으로 가입해 2억원을 기부한 박종옥(53) 서원콤프레샤 대표는 올해 7월 자신의 사망 보험금 10억원을 유산 기부하겠다고 약정했다.

부동산이나 증권·보험 기부의 경우 법적 절차 등이 간단하지 않다. 이에 공동모금회는 현금 기부 외에 부동산·증권·보험을 기부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희망 자산 나눔' 캠페인(문의 02-6262-3085)을 하고 있다. 부동산 기부 희망자가 공동모금회에 연락하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증권은 매각 후 바로 기부하거나 배당액의 일정 부분을 약정 기부할 수 있다. 보험의 경우 사망 보험은 유산 기부를 하거나 수익자를 공동모금회로 지정해 기부할 수 있다.

강학봉 공동모금회 일반모금사업본부장은 "우리나라 자산가들의 재산은 50% 이상이 부동산이고, 금융자산의 30% 이상이 주식·채권 등이기 때문에 앞으로 비현금 자산 기부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현금 기부 외에도 부동산, 주식 등의 자산 기부가 활성화돼 있다. 미국의 비영리 자선 단체 '기빙(Giving) USA'에 따르면 부동산·주식·차·옷 등 비현금 기부가 1988년 120억달러에서 2000년 600억달러, 2007년 620억달러 등으로 늘었다(2010년 달러 가치 기준).

비케이 안(Ahn) 한국기부문화연구소장은 "정부 차원에서 이들 기부자의 노후 문제, 세액 공제 혜택 등에 관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비현금 기부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초 정부는 비현금 기부자들을 위해 현금과 유가증권을 기부하면 최고 50%를, 부동산을 기부할 경우 부동산 평가액의 30%를 연금으로 받도록 하는 기부연금제도(일명 김장훈법)를 국회에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