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대기업 인사팀 박모(32) 대리는 신입사원 공채가 진행된 지난 두 달간 쇄도하는 청탁 때문에 홍역을 치렀다. 대학 후배들은 서류전형 합격자 발표 전날 "통과했는지 먼저 알 수 없느냐"며 매달렸고, 지원자 신분인 고교 동창은 "면접 질문들을 좀 꼽아달라"고 떼를 썼다. 아버지까지 "친구 딸이 면접까지 갔다더라"며 '은근한 압력'을 넣었다. 박 대리는 "딱 잘라 거절하면 '인정머리 없다'고 할 테고 '알아보겠다'고 하면 기대감을 가질까 봐 이만저만 난처한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올 하반기 기업 공채가 막바지로 치닫는 가운데, 채용을 진행하는 기업 인사 담당자들이 사방에서 밀려오는 청탁과 민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인사 부서 간부부터 갓 입사한 신입사원까지 예외 없이 청탁과 민원이 몰려든다. 이들은 "공채 시즌이 되면 업무보다 더 스트레스를 주는 게 이런 청탁을 처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탁의 유형은 정보수집형, 떼쓰기형, VIP 민원형으로 나뉜다. 정보수집형은 지원서 접수나 필기시험·면접을 앞두고 지원자들이 친분 있는 인사 담당자에게 과도한 질문을 하는 경우다. C기업 인사팀 김모(30) 대리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채용 규모와 일정을 슬쩍 물어보는 정도는 애교"라며 "면접관이 누구인지, 어떤 문제가 출제되는지 묻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S은행 이모(39) 과장은 "지난해 합격자들의 이력서를 보여달라는 부탁까지 받아봤다"고 했다.
떼쓰기형은 안면을 핑계로 "무조건 잘 봐달라"는 경우다. 서류·면접 합격을 부탁하거나 최종 합격 여부를 먼저 알려달라는 이들이다. S그룹 계열사 인사팀 한모(31)씨는 "이번 공채 때 서류만 통과시켜 달라는 친구에게 '내 권한이 아니다'고 했다가 결국 언성을 높이며 다툰 적도 있다"고 했다. 공채 철이 되면 회사 동료들의 눈빛도 달라진다. A기업 인사팀 권모(37)씨는 "갑자기 밥 먹자는 사람들이 생기는데 가보면 '아는 사람인데 서류만 잘 좀…'이라거나 '지원자를 한번 만나달라'는 말을 꺼낸다"고 했다.
대부분의 청탁은 에둘러 거절하지만 절대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 회사 고위 간부들을 통하는 이른바 'VIP 민원'이다. H기업 인사팀 정모(31)씨는 "간부들이 법조인이나 고위 공무원 자녀, 거래사 간부 자녀들의 합격 여부를 먼저 알려달라고 할 때는 은밀히 귀띔해주기도 한다"고 했다. S기업의 한 직원은 "사회 고위층은 질문만 해와도 압박이 크다"며 "VIP 민원은 주로 면접을 앞두고 많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대기업 인사팀 근무 11년 차라는 강모(43)씨는 "살벌한 취업 전쟁이 계속되는 한 이런 청탁도 줄어들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