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에 12년 만에 금메달을 안긴 남자 복싱의 '간판' 신종훈(25·인천시청)이 국제복싱협회(AIBA)와의 분쟁으로 선수 자격 박탈 위기에 놓였다.
신종훈은 지난 18일 AIBA로부터 "집행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모든 국내외 대회 출전을 잠정 금지시킨다. AIBA프로복싱(APB·AIBA Pro Boxing) 계약 위반에 대해 징계위원회가 열릴 것이다"는 이메일 공문을 받았다.
AIBA는 신종훈이 자신들과의 계약에 따라 이달 초 중국에서 열린 APB 경기에 출전했어야 하지만 이를 거부, 제주 전국체전에 나간 것을 문제 삼고 있다.
AIBA는 지난 5월 신종훈이 APB 계약서에 사인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AIBA에 따르면 ABP에 나갈 경우 올림픽,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을 제외한 국내 아마추어 대회에 출전할 수 없다. 당연히 전국체전에도 나갈 수 없다.
APB는 AIBA가 올림픽 복싱 부활을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복싱 프로그램이다. AIBA와 프로 계약을 맺을 경우 연간 4~5회 그들이 주선하는 프로대회에 나가 성적에 따라 3000달러~10만달러의 대전료를 받는다. 신종훈의 경우 1경기 당 180~200만원을 받게 되는데 이마저 대한복싱협회 몫으로 30%가 나간다.
이와 관련해 신종훈은 계약이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신종훈은 "원래 지난 4월 AIBA 우칭궈 회장이 국내에서 대한복싱협회 관계자와 나를 만나 삼자가 한 자리에서 계약서에 사인할 예정이었지만 돌연 취소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우칭궈 AIBA 회장은 개인적인 이유를 핑계로 돌연 방한 일정을 바꿨다.
그러던 중 신종훈은 지난 5월 독일 전지훈련 기간 중 AIBA 직원이 내민 계약서에 사인했다. 당시 그는 내용을 알 수 없는 계약서에 사인할 수 없다고 버텼지만 박시헌 대표팀 감독 등이 그를 종용했다.
신종훈은 "당시 내겐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밖에 없었다. 다른 어떤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박 감독 등이 분명 문제가 생길 경우 폐기처분 시켜 주겠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말을 바꿨다. 지금 와서 이렇게 문제가 커질 줄 몰랐다"고 했다.
신종훈은 10월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기쁨이 채 가시지 않은 11월초에 갑작스럽게 APB 대회에 출전하라는 협회의 통보를 받게 된다. 인천시청 소속이었던 신종훈은 고민 끝에 이를 거부하고 전국체전에 출전했다. 인천시청의 월급을 받고 있는 신종훈으로선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신종훈은 인천시청과 올 12월까지 계약이 되어 있다.
신종훈은 "APB에 가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APB에만 간다면 후원이 끊겨 생계에 지장이 크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때문에 신종훈은 협회와 지난 5월부터 후원사에 대해 수 차례 이야기를 했지만 협회는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신종훈은 "큰 돈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정말 살기 위해 절박하게 이야기 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편 AIBA는 신종훈이 최종계약서를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자 대한복싱협회를 통해 지난 11월 6일자로 뒤늦게 우편으로 최종 계약서를 보내왔다.
신종훈은 "계약서의 서명 날짜가 올 2월로 되어 있는데 그때 난 동계 훈련 중이었다. 누구와 접촉한 적이 없다. 만약 독일서 받아갔던 사인으로 계약서를 만들었다면 무효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제는 대한복싱협회가 사실상 AIBA의 눈치를 보면서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협회는 신종훈이 APB에 나갈 것을 계속해서 종용하면서 그렇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고 압박한 상황이다.
실제로 대표팀의 한 코칭스태프는 신종훈에게 "펜싱 신아람이 국제 분쟁을 위해 5억원을 썼는데도 결국 패했다. 네가 그만한 돈이 있느냐"고 협박성 발언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회 관계자는 24일 뉴스1과의 통화에서 신종훈 사태에 대해 "중간에 협회도 난처하게 됐다. 그렇지만 국내 협회서 국제 기관인 AIBA의 결정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누구 말이 맞는지는 법적 공방까지 갈 수도 있다. 시간이 걸릴 문제"라며 오히려 엄포를 놓았다. 또 뒤늦게 이달 초 발부된 계약서에 대해서도 "협회 직원이 착오가 있었다"는 핑계를 댔다.
신종훈은 선수 생명이 걸린 외로움 싸움으로 인해 잠도 거의 못자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복싱 하나만 보고 달려왔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곤 복싱 밖에 모르는 내가 지금 링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이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이어 "대한체육회 등에서 조사를 해줬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다 이렇게까지 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