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직지|이규희 글|김주경 그림|밝은미래|156쪽|1만원

긴 잠에서 깨어난 직지(直指)는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라고 물어볼 만한 상황이었다. 1967년 프랑스 국립도서관. 이 오래된 서책에는 고려 우왕 때인 1377년에 금속활자로 찍어 냈다는 기록이 있었다. 사서로 일하던 박병선 박사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보다 78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지금의 충북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된 직지는 이름 그대로 '정확하게 가리키다' '바로 다스리다' 같은 뜻이 담긴 책이다. 사람이 마음을 바르게 가졌을 때 비로소 부처님 마음을 깨닫게 된다는 가르침을 전하려 했다. 글자를 한 자 한 자 새겨 밀랍으로 본을 뜨고 거기에 쇳물을 부어 활자로 만들고 다시 하나씩 뽑아내 닥종이로 찍어내는 고려 장인의 솜씨도 스며 있다.

이 동화는 직지가 주인공이다. 직지가 상·하 두 권으로 태어나서 여러 사람 손을 거치다 프랑스까지 흘러갔다가 재발견되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시작과 끝만 알 뿐이라, 나머지 몸통은 상상으로 채웠다.

역적의 서책으로 몰려 불태워질 위기를 넘기고, 가짜 양반에게 헐값에 팔려가고, 도굴꾼의 손에 넘어가고…. 결국 주한 프랑스 초대 공사가 사들여 바다를 건넜다. 귀향하지 못하는 직지의 사연을 들려준다. 책장이 바삐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