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은 정해져 있다. 누군가는 먼저 가고 누군가는 남는다. "진통제가 다 소용없다. 죽을 사람이 살아 있는 것 같다"는 환자에게 수많은 죽음을 지켜봐 온 호스피스 의사는 말한다. "우리가 다 언젠가 죽을 사람들이 지금 살아 있는 거예요."

경계에 선 삶과 죽음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두 편이 곧 개봉한다. 76년을 연인처럼 살았던 노부부의 이별기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감독 진모영·27일 개봉)'와 죽음을 준비하는 호스피스의 환자와 가족들 이야기 '목숨(감독 이창재·12월 4일 개봉)'. 사는 게 좋은 줄 잊고 지내는 동안 소홀히 했던 죽음에 관해 질문하는 영화다. 영화가 타인의 죽음을 짚어 갈 때 관객이 돌아보게 되는 것은 오히려 자신의 삶이다.

노부부의 사랑, '님아, 그 강을…'

할아버지 무덤엔 아직 눈이 쌓이지 않았다. 부부는 76년을 함께 살며 자식 열둘을 낳아 여섯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냈다. 무덤에 비스듬히 기댄 화환 앞에서 할머니는 자식들 살았을 적 못 입혔던 고운 빛깔 새 내복 몇 벌과 할아버지 새 한복을 함께 태웠다. "내 보고 싶더래도 참아야 돼. 낸도 할아버지 보고 싶어도 참는 거야." 할머니는 두어 걸음 뗀 뒤 무덤을 돌아봤다. 또 두어 걸음, 또 두어 걸음…. 끝내 눈밭에 주저앉았다. 울음이 옅은 눈발처럼 낮게 깔렸다. "허으으…. 할아버지, 어여 데리러 와요. 손목 잡고 하얀 저고리 파란 바지 파란 치마 입고 저기 재 너머 같이 가요."

노부부는 늘 색깔을 맞춘 ‘커플 한복’을 곱게 차려입었다. 할아버지의 병세가 깊어질 때 누런 수의를 빨아 햇볕에 널며 할머니는 혼잣말을 했다. “석 달만 더 있다 같이 가요. 같이 가면 얼마나 좋겠소….”

98세 로맨티스트 조병만 할아버지와 89세 소녀 감성 강계열 할머니 부부는 TV 다큐 프로그램으로도 소개됐던 '76년째 닭살 커플'이다. 노부부는 마당의 낙엽을 쓸다 서로에게 뿌리며 장난을 치고, 나물을 씻다 개울물을 튕기며 웃음을 터뜨린다. 밤에 할머니가 화장실을 갈 땐 할아버지가 문 밖에 서서 노래를 부른다. 사랑이 깊을수록 이별은 더 눈물겹다. 진모영 감독은 "진짜 저럴까 싶을 만큼 아름다운 이 노부부의 사랑을 오래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할아버지가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돌아가시는 과정까지 담게 됐다"고 했다. 전체 관람가.

호스피스 사람들 이야기 '목숨'

호스피스에 들어온 환자들이 평균 머무는 기간은 21일. '목숨'은 1년여 동안 호스피스에 들고 나는 환자와 가족들을 찍은 다큐멘터리다. 평생 고생만 하다 새로 단장한 집에 들어가기 직전 말기 암 판정을 받은 아주머니, 아직 덜 자란 자식들이 가슴에 맺혀 떠나지 못하는 젊은 가장, 틈만 나면 짜장면 먹으러 병원 밖으로 나가는 전직 수학 교사 할아버지, 신(神)에 대한 회의를 안고 죽음에 가까이 가기 위해 신학교를 휴학하고 온 예비 신부(神父)…. 카메라는 죽음 앞에 선 다양한 사람의 모습을 담담히 지켜본다. 무속인 다큐 '사이에서', 사미니(예비 여승) 다큐 '길 위에서' 등을 찍은 이창재 감독은 "절망하고 떠나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카메라의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다. 누구라도 지금 이 순간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면 삶을 훨씬 더 농도 짙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환자들은 호스피스에서 몸과 마음의 고통을 누그러뜨리며 죽음을 준비한다. 카메라가 죽음의 문턱을 넘는 환자의 침대를 부감 샷으로 잡을 때 잠들 듯 평온한 죽음과 산 자들의 오열은 기묘한 대비를 이룬다.

말기 암 40대 가장을 위해 가족은 새집에서 파티를 열었다. 어린 딸은 웨딩드레스를 입고 아빠와 사진을 찍었고, 어린 아들도 미리 군복을 입고 아빠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휠체어에 앉은 아빠는 말했다. "하느님이 많은 것을 가져가셨지만 더 큰 것을 주셨구나 생각해요. 건강했다면 알지 못했을 것들. 진심으로 대하고, 진심으로 아끼는 법 같은."

예측 가능한 죽음 앞에 서면 떠날 사람도 보낼 사람도 간절해진다. 그런 간절함으로 오늘을 잘 살고 있는가. 영화는 묻는다. 대답은 산 자의 몫이다.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