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모 대학 대학원생 노모(32)씨는 최근 캠퍼스 안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지난 10일 오전 학교 안에서 운전을 하는데 맞은편에서 오던 승용차가 중앙선을 넘어 노씨의 차를 들이받았다. 상대방은 "통화하느라 잠깐 한눈을 팔았다"고 했다.
하지만 노씨는 그 운전자에 대해 형사책임은커녕, 보상책임도 요구하기 힘든 상황이다. 출동한 경찰이 "학교 진입로의 차단기 안쪽은 사유지라 도로교통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과실 여부를 경찰에서 다툴 수 없으니 두 분이 민사 합의하시라"고 설명한 직후 상대 운전자가 "난 잘못 없다"며 말을 바꾼 것이다. 노씨는 "제한속도 시속 30㎞를 지킨 나만 바보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 캠퍼스가 교통안전의 사각지대로 방치되고 있다. 경찰이 임의로 단속할 수도 없고, 교통법규를 위반했다고 처벌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대학 캠퍼스 내 도로는 '사유지'로 분류돼 도로교통법이 적용되지 않는 탓이다.
캠퍼스가 넓은 대학들은 자체적으로 교내 통행속도를 최고 시속 20~30㎞로 제한하고 주황색 중앙선과 횡단보도도 그려 놓았다. 하지만 학교로 진입한 택시나 승용차, 오토바이가 이를 무시하고 내달려도 벌점을 받거나 범칙금을 내지 않는다. 사람을 치어 다치게 하면 형사입건되기는 하지만 대부분 면책된다.
예컨대 일반 도로에선 횡단보도나 중앙선을 침범했다가 인명 사고를 내면 중과실에 해당돼 보험에 들었어도 형사처벌 대상이다. 그러나 같은 유형의 사고라도 학교 안 횡단보도나 중앙선은 법적 효력이 없어 중과실이 면제된다. 종합 보험자는 대개 '공소권 없음'처분을 받는다. 사상자가 없어도 형사처벌 가능한 대학 내 교통사고는 음주 운전과 약물 복용 운전, 뺑소니 세 가지뿐이다. 이를 뺀 나머지 사고는 보험을 통해서 처리해야 한다. 운전자가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으면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이런 법적인 허점은 대학생들의 안전 불감증과 맞물려 교통사고 위험을 높인다. 지난 7일 서울 신촌의 한 대학교 캠퍼스 안에서 재학생 한 명이 중상을 입는 사고가 났다. 이날 오전 8시쯤 킥보드를 타고 교내 언덕길을 내려가던 1학년 L모(20)씨가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던 차량의 사이드미러에 걸려 넘어진 것이다. 머리를 심하게 다친 L씨는 뇌 수술을 받았지만 중태다. 당시 L씨는 헬멧을 쓰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가 난 후 대학 측은 빨간 조끼를 입은 안전요원을 배치해 차량이 많이 다니는 지역에 서서 속도를 지키라고 안내하기 시작했다.
캠퍼스 안에선 킥보드뿐 아니라 스쿠터, 자전거 등을 타면서 헬멧 등 보호장구를 착용하지 않는 학생이 대부분이다. 스마트폰을 보거나 이어폰을 낀 채 앞뒤 살피지 않고 걸어가는 학생도 부지기수다. 수년 전 서울 성북구에 있는 한 대학 교내에서도 스마트폰을 보고 걷던 학생이 교내 셔틀버스에 치여 숨지는 일이 있었다.
재학생들은 "교내 도로가 인도와 차도 구분이 없고 좁아 사고 위험이 항상 있었다"며 학교에 항의하기도 했다.
지난 14일 오전 본지 취재팀이 서울의 한 대학 본관 앞 삼거리의 통행 상황을 살펴봤더니, 30분간 길을 건넌 150여명 가운데 횡단보도로 건너간 사람은 단 7명뿐이었다. 95% 이상이 무단횡단을 했고, 그중 절반이 넘는 74명은 스마트폰을 만지거나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박천수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대학 캠퍼스에는 시민도 많이 드나들고 시내버스 노선이 들어가기도 하는데 안전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허점이 있다"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교내에서 교통안전을 살피지 않는 보행자들은 그만큼 자신을 위험에 노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