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차학봉 특파원

집권 자민당과 야당 민주당 등 일본 정치권이 내달 총선에 대비해 출마자 선정, 선거 포스터 제작 등 본격적인 선거 준비에 들어갔다. 아베 신조 총리가 지지율의 근간인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제정책)'에 빨간불이 켜지자 내달 조기 총선 실시로 돌파구를 모색하려는 것이다. 일본은행이 지난 10월 31일 연간 국채 구입량을 50조엔에서 80조엔으로 늘리는 '제2차 양적 완화 조치'를 발표한 것도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한 긴급 처방이다.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가 "디플레 탈출을 위해 뭐든지 하겠다"고 발언한 것도 일본 경제에 그만큼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4월 소비세 인상 후 소비 얼어붙어

아베 총리는 2012년 12월 취임하면서 ▲금융 완화 ▲재정 투입 ▲성장 전략 등 이른바 3개의 화살로 경기를 되살리겠다는 '아베노믹스'를 선언했다. 일본은행이 지난해 돈 풀기를 본격화하면서 주가가 폭등하고, 엔화 환율 상승(엔화 가치 하락)으로 수출 기업의 실적이 급상승했다. 돈이 풀린 덕분에 인력난이 발생할 정도로 실업률도 낮아졌다.

그러나 지난 4월 소비세를 5%에서 8%로 올리면서 경기 회복에 급제동이 걸렸다. 지난 2분기 일본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 대비 1.7%,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8% 감소했다. 소비세 인상 여파로 마이너스성장이 예상되긴 했지만, 감소 폭은 예상을 뛰어넘는 충격적 수치였다. 시간이 갈수록 경기 침체 조짐은 뚜렷해지고 있다. 지난 9월 2인 이상 가계의 소비지출은 전년 동기보다 5.6% 감소했다. 실질 수입도 6% 줄었다. 최근 내각부가 발표한 10월 소비자 태도 지수는 38.9로 전월보다 1.0포인트 낮아졌다. 석 달 연속 악화됐다. 소비자 태도 지수가 50을 넘으면 소비를 늘리겠다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이며, 50 미만이면 그 반대를 뜻한다.

◇엔화 약세 수출 기업만 혜택

일본은행이 추가적인 돈 풀기 정책을 발표했지만, 주가만 폭등시킬 뿐 일본 경제의 경쟁력 강화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관론이 지배적이다. 일본 정부가 발표한 4∼9월 무역수지 적자는 5조4271억엔으로, 1979년도 이후 최대 규모 적자다. 같은 기간 수출이 전년 동기보다 1.7% 증가했지만, 수입은 그보다 많은 2.5%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아베 총리 취임 이후 엔화 가치가 30% 이상 약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수출 증가 효과가 미미했다. 사카키바라 에이스케(榊原英資) 아오야마가쿠인대학 교수는 "이미 일본 제조업체 상당수가 해외로 이전했기 때문에 엔 약세가 수출 증가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일본 아베 총리가 2012년 12월 취임한 후 경기 부양을 위해 추진해온 이른바‘아베노믹스’가 일본 경제의 근본적인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관론이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의 돈 풀기로 인한 엔화 약세는 수입 의존도가 높은 내수기업의 발목을 잡을 우려가 크고 구멍 난 재정을 메우려는 소비세 인상은 소비를 예상보다 크게 끌어내려 경기 회복에 제동을 걸고 있다.

일본 정부는 기업들이 엔화 약세를 활용, 해외 판매 가격을 인하해 수출 물량을 늘릴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일본 기업들은 해외 판매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엔화 약세분만큼 수익을 늘리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엔화 약세가 무한정 지속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도요타는 최근 2015년 3월 결산 순이익 전망치가 전년보다 10% 증가한 2조엔에 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자동차 판매 대수 증가가 아니라 엔화 약세 효과 덕분이다. 도요타는 엔화 환율이 1달러당 1엔 오르면(엔화 약세) 이익이 400억엔 늘어난다.

◇내수 기업 비명, 실질임금 15개월째 하락

엔화 약세는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내수 기업에는 치명타이다. 니가타현 이토이가와(糸魚川)시에 있는 수입 오징어 가공 공장은 부지 조성 공사만 끝난 상태에서 방치돼 있다. 엔화 약세에 따른 환율 상승으로 오징어 수입 가격이 치솟으면서 공장 건설을 중도에 포기했기 때문이다. 가방 수입 업체인 도쿄의 후카이사는 최근 수입 제품 가격 상승으로 파산했다. 실제 일본 조사업체 TSR은 1~10월 엔화 약세로 238개 기업이 파산했다고 분석했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2.2배 늘어났다. 오사카 상공회의소가 회원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달러 110엔 이상 환율에 대해 10%만 도움이 된다고 했다. 회원사의 60%는 95~105엔을 적정 환율로 봤다. 일본은행이 최근 추가 양적 완화를 발표하자, JP모건체이스는 1달러당 엔화가 연말 115엔, 내년 하반기에는 120엔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14일 116엔까지 하락함에 따라 내년에는 125~130엔 수준으로 폭락할 가능성도 있다.

경제단체인 게이단렌(經團連) 사카키바라 사다유키(榊原定征) 회장은 "엔화 약세가 지속되면 일본 경제 전체적으로 부작용이 커진다"고 우려했다. 수입 물가 상승으로 실질임금도 15개월째 하락세이다. 일본 정부도 엔화 약세로 피해를 보는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2000억엔 규모 자금 지원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기업의 투자를 늘릴 '성장 정책'이 표류하면서 돈 풀기를 통한 엔화 약세 정책이 오히려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