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림 여론조사팀장

'안풍(安風)'이 거셌던 2011년 말 리서치앤리서치의 여야 후보 가상(假想) 대결 조사에서 당시엔 정치 참여 의사를 밝히지도 않았던 안철수 의원이 50%로 36%인 박근혜 대통령을 크게 앞섰다. 하지만 1년 뒤에 안 의원은 야권 단일 후보 경쟁에서도 밀렸다. 2002년과 2007년에도 여론조사 선두에 오르며 돌풍(突風)을 일으켰던 정몽준·고건 등 정치권 밖의 '제3후보'는 모두 대선 투표용지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얼마 전 차기 대선 주자 조사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39%로 1위를 기록하며 또다시 '제3후보론'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 한 언론사 조사에서도 반 총장이 34%로 2위를 20%포인트 이상 차이로 압도했다. '반 총장이 다음 대선에 출마하는 것'에 대해 국민 과반수(55%)가 찬성한다는 조사도 있었다.

반 총장의 인기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안철수 현상'의 대체재(代替財) 성격이 크다. 한길리서치의 지난 3월 조사에서 반 총장(23%)과 안 의원(17%)은 그다지 크지 않은 차이로 1·2위였지만 6월 지방선거와 7월 재·보선을 거치며 안 의원의 '새 정치' 실험이 실패한 이후인 10월 조사에선 39% 대(對) 4%로 크게 벌어졌다. 약 반년 사이에 안 의원의 지지층이 대부분 반 총장 쪽으로 옮아간 셈이다. 반 총장의 지지율도 이처럼 휘발성이 강할 수 있다.

벌써부터 몸이 달은 여야가 서로 '반 총장은 우리 편'이라고 주장한 것은 그의 지지층이 여야의 지지 기반과 모두 겹치는 독특한 현상의 영향도 있다. 한길리서치 조사에서 반 총장은 20대(46%)뿐 아니라 60대 이상(49%)도 절반에 근접하는 지지를 보냈다. 여당 지지층의 과반수(52%)가 지지하는 그를 야당 텃밭인 호남에서도 절반가량(48%)이 지지했다. 정치 불신층의 폭이 그만큼 넓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반 총장의 지지율은 당분간 급락할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인다. 그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유엔 사무총장 임기가 끝나는 2016년 말까지 국내 정치와 거리 두기를 지속할 수밖에 없는데, 그게 바로 지지율 고공 행진의 비결(秘訣)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론조사는 순간적인 장면을 촬영하는 스냅사진일 뿐 먼 훗날을 예측하는 도구가 아니다. 빛 조절과 각도에 따라 사진의 품질이 달라지듯 여론조사도 설문 방식과 표본 구성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반 총장을 빼면 김무성·문재인·박원순 등 여야 잠룡(潛龍)들이 선두권을 형성한다는 여론조사도 흥밋거리에 불과하다. 차기 주자로 거론되는 정치인 중 누구도 다음 정부의 비전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않은 시점이기 때문이다. "요즘 실시하는 차기 대선 여론조사는 2017년 프로야구 우승팀 맞히기처럼 허황된 것"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그래도 정치권은 지지율 높은 주자에게 호들갑을 떨며 불나방처럼 달려들곤 한다. '여론조사가 대통령을 만든다'는 확신이 가득 차 있는 듯하다. 하지만 여론조사가 미래를 여는 비밀의 열쇠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