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하는 간판스타로 착실히 성장하고 있는 손흥민(22·레버쿠젠)이 자신이 동경하던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또 하나의 역사를 썼다.
손흥민은 5일(한국 시각)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페트로프스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제니트(러시아)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C조 4차전에서 혼자 두 골을 몰아넣으며 팀의 2대1 승리를 이끌었다. 한국 선수 중 챔피언스리그 최다골(5골) 기록을 보유한 박지성(32)도 해내지 못한 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 한 경기 멀티골(한 경기 2골 이상)을 달성한 것이다. 자신의 챔피언스리그 본선 2·3호 골이다. 손흥민은 레버쿠젠에서 자신이 득점을 한 경기에서 한 번도 팀이 패하지 않는 기록도 17경기(15승2무)로 늘렸다.
3연승을 달린 레버쿠젠(3승1패·승점 9)은 AS모나코(승점 5), 제니트·벤피카(이상 승점 4)와의 격차를 벌렸다.
◇한국인 첫 챔스리그 멀티골
제니트는 올 시즌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1위를 달리고 있는 강호다. 브라질월드컵에서 러시아 대표팀으로 한국전에 나선 알렉산드르 케르자코프, 브라질 대표팀의 헐크 등 걸출한 스타들이 뛰고 있다. 하지만 이날 경기의 주인공은 손흥민이었다.
득점 없이 공방을 주고받던 후반 23분 손흥민이 세트피스 상황에서 뽑아낸 골은 그가 왜 분데스리가에서 주목받는 선수인지를 보여줬다. 손흥민은 프리킥 키커로 나선 하칸 찰하노글루에게 다가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무언가를 속삭인 뒤 달려갔다. 찰하노글루는 강한 슈팅 대신 패스로 공을 페널티 지역 앞까지 보냈고 공을 받은 카림 벨라라비가 다시 손흥민에게 연결했다. 손흥민은 강력한 오른발 인사이드킥으로 골문 오른쪽을 갈랐다.
손흥민은 5분 만에 역습 기회를 살려 결승골까지 직접 넣었다. 후반 28분 중원 부근에서 슈테판 키슬링이 찔러준 스루패스를 받은 손흥민은 페널티 지역 앞에서 빠른 돌파로 수비를 따돌리고 왼발 슛을 성공시켰다. 경기 후 적장인 안드레 비야스-보아스 제니트 감독마저 "손흥민의 두 골은 모두 환상적이었다"고 말하며 손흥민의 활약을 칭찬했다. 이날 경기의 '맨 오브 더 매치(MOM·최우수 선수)'에 선정된 손흥민은 후스코어드닷컴으로부터 양팀 최고인 평점 9.1점을 받았다.
◇'탈모 스트레스' 한 방에 날려
손흥민은 지난달 10일 울리 슈틸리케 대표팀 감독의 데뷔전이었던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에 나섰지만 골을 기록하지 못했다. 당시 그의 머리 앞쪽에 난 동전 크기의 원형 탈모 흔적이 화제가 됐는데 이번 제니트전에서도 빠른 돌파로 머리가 휘날릴 때마다 어김없이 이 흔적이 드러났다.
축구 팬 사이에선 손흥민이 팀 내 득점 경쟁으로 인한 압박감이 탈모의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최근 소속팀 불허로 인천아시안게임 출전이 무산된 것도 정신적 스트레스가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손흥민은 최근엔 독일 데뷔 이후 처음으로 공식 경기에서 퇴장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손흥민은 이날 큰 무대에서의 멀티골로 그동안의 고민을 한 번에 날려버릴 수 있게 됐다. 손흥민은 챔피언스리그(5골·플레이오프 포함)와 리그(4골), DFB포칼(1골)까지 올 시즌 10골을 기록하고 있다.
손흥민은 "그동안 내 축구 인생에 여러 하이라이트가 있었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 나온 두 골은 아주 특별하다"며 "오늘 경기는 나보다 팀 전체가 영웅"이라고 말했다.
이날 다른 조에선 레알 마드리드(스페인·B조)와 도르트문트(독일·D조)가 각각 리버풀(잉글랜드)과 갈라타사라이(터키)를 물리치고 나란히 4연승(승점 12)을 달리며 챔피언스리그 16강행을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