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에도 시대 사랑하면서도 맺어질 수 없는 남녀가 다음 생 기약하며 함께 자살하는 일이 유행했다. 이걸 소재 삼아 가부키·인형극·소설도 나왔다. 사람들은 정사(情死) 같은 흔한 이름 대신 '마음속', 신주(心中)라고 불렀다. 죽음으로 사랑을 지켜내겠다는 맹세를 뜻했다. 지금도 일본에선 동반 자살을 뜻하는 보통명사처럼 쓴다. 자살을 미화해선 안 되겠지만 죽어 내세에서라도 편안한 곳 찾으라는 바람이 담겨 있다.

▶여럿이 함께 죽는 자살도 가지가지다. 왕이 죽으면 어쩔 수 없이 따라 죽는 순사(殉死), 사교(邪敎) 믿다 집단 자살하는 일도 벌어진다. 고려사절요나 조선왕조실록엔 관리의 학정(虐政)에 지친 백성이 세상 등지는 사례가 여럿 나온다. 60·70년대 신문 스크랩 들여다보면 생활고 못 이긴 일가족 자살 기사가 끊이지 않는다. 그때보다는 살 만해졌는데도 소득 양극화가 심해져 그런 사례가 더 늘고 있다고 한다.

▶어떤 연구팀이 1995년부터 10년 동반 자살 366건을 조사해보니 55% 가량이 가족 관계였다. 연인 관계가 많은 미국·호주와 달랐다. 어머니와 아들·딸 비율이 제일 높고 부부, 아버지와 아들·딸, 형제·자매 순이었다. 부모·자식 관계가 열에 일곱인데 그중 어린 자녀가 포함되는 경우가 60%쯤이었다. 자살 이유는 '생활고'가 절반이고 가족 갈등(36.5%), 건강 문제(19.2%)가 뒤를 따랐다.

▶서울 반지하 월세 방에 세 모녀가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을 남기고 목숨을 끊은 게 얼마 전 일이다. 엊그제는 인천에서 살림 쪼들리던 부모와 딸이 자살했다. 엄마 유서엔 '점점 마이너스(대출)는 늘고 보험 대출은 차고…끝내 마이너스 인생을 살다 간다'고 쓰여 있었다. 무엇보다 열세 살 딸이 남긴 유서가 가슴을 친다. '아빠, 나랑 엄마랑 먼저 갔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 우리 가족은 영원히 함께할 것이기에 슬프지 않아.' 경찰은 엄마와 딸이 연탄불 피워 먼저 떠나자 아빠가 뒤따른 것 같다고 했다.

▶죽음을 앞에 둔 열세 살 아이 유서라기엔 너무 담담하고 생생하다. 그러다 보니 세간에는 부모를 탓하는 소리도 나온다. 엄마는 남편에게 남긴 유서에 '아이가 이해해줘 같이 가게 됐다. 딸 데려간 독한 어미라 하지 말고 용서해'라고 적었다. 어린 자식을 부모가 함께 데려가는 경우엔 동반 자살이 아니라 '자녀 살해 후 자살'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 가족을 따뜻하게 보듬지 못하고 죽음으로 내몬 우리는 책임이 없는 건지. 날씨만큼이나 마음도 쓸쓸해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