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훈 파리 특파원

지난달 초 영국 국세청(HMRC)은 세수(稅收)와 관련한 자료 하나를 발표했다. '너지 정책'으로 세금 2억1000만파운드(약 3600억원)를 더 걷었다는 것이었다. 너지(nudge)의 사전적 의미는 '팔꿈치 같은 것으로 옆구리 등을 살짝 찌르는 것'이다. 2009년 행동주의 경제학자인 리처드 탈러 시카고대 교수와 법학자인 캐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교수가 함께 쓴 '넛지'(외래어표기법에 따르면 '너지')라는 책 제목으로 널리 알려진 단어다. 행동주의 경제학에선 미세한 개입으로 스스로 어떤 선택을 하게끔 유도하는 것(자유주의적 개입주의)을 말한다.

영국 국세청의 '너지 정책'은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이전엔 자동차세(稅)를 내지 않은 사람에게 '납세 기한이 지났으며, 차를 압류할 수 있다'는 글을 담은 독촉장을 보냈는데 최근엔 체납자의 자동차 사진도 함께 실었다. 그러자 체납자의 세금 납부율이 3배 정도 높아졌다고 한다. 체납자를 대상으로 한 정책 심리전에서 성공한 셈이다.

이와 유사한 단편적 사례는 다른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영국이 주목받는 이유는 '너지 정책'을 중앙정부 차원에서 과감하게, 또 꾸준하게 도입·실행하면서 성과를 낸다는 점이다.

2010년 집권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새 정부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내각 사무처 아래에 '행동통찰력팀(behavioural insights team)'이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캐머런은 이곳에 경제학자·심리학자 9명을 배치했다. 흔히 '너지 팀(nudge unit)'이라는 별명으로 일컫는 이 조직의 주된 목적은 정부 재정과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소한 정책'을 개발하고 개선하는 것이었다.

영국 실업자들은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구직센터를 주기적으로 찾아가 상담사를 만나야 한다. 이전엔 그동안 열심히 일자리를 찾았는데도 못 구한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최근 영국 정부는 상담 내용을 조금 바꾸었다. 실업자가 이전의 구직(求職) 활동이 아니라 향후 구직 계획을 설명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자 실업자들은 자기소개서를 어떻게 작성하고, 어떤 직장을 알아봐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구직 실패담' 대신 '구직 계획'을 생각하면서 실업자들의 태도가 훨씬 희망적으로 변하고 취업에 성공하는 경우가 늘었다. 그만큼 정부가 지급해야 하는 실업급여도 줄어들었다.

영국 정부가 '너지 팀'을 구상한 것은 강한 규제 대신 느슨한 개입으로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종종 규제는 국민의 반발만 불러오고 정작 원하는 효과를 얻지 못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너지 정책'에 대해 "근본적 대안이 아니며 '꼼수'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영국 내부에서도 나온다. 하지만 참신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국민의 행동을 사회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는 대체로 동의한다.

최근 세수 부족에 시달리는 우리나라도 '너지 팀'을 검토해볼 만하다는 생각이다.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나 예산 떠넘기기 같은 구태의연한 모습만 재탕하는 공무원 사회에도 자극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