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촌 재동초등학교 뒤편에 학당이 하나 있으니 이름하여 '북촌학당(北村學堂)'이다. 손바닥만 한 마당까지 합해 30평이 채 안 되는 작고 오래된 한옥이다. '누실명(陋室銘)'에서 그랬던가! '산이 높다고 장땡이 아니고 신선이 살아야 명산(山不在高 有仙卽名)'이라고. 집이 크다고 인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 작고 초라하더라도 군자가 거처하고 있어야 학당이 된다. 군자가 거처하는데 어찌 누추함이 있겠는가(君子居之 何陋之有). 콘텐츠가 있는 선비가 머무르면 아무리 초라한 곳도 광채가 난다는 말이다.
이 학당서 몇 명의 훈장이 고전을 강의한다. '좌파논어' 저자 주대환(61)은 '논어'를 새롭게 해석한다. 실패한 정치가의 반성문이 논어라고 해석한다. 자한편 28장의 '知者不惑하고 仁者不憂하고 勇者不懼니라'는 대목도 그렇다. 이는 공자가 되는 일은 없는데 시간은 흘러가고 노잣돈도 떨어지고 따르던 제자들도 등을 돌리는 상황에서 나온 신세한탄이라고 해석한다. 현재가 근심이 가득하고(憂), 미래가 두렵고(懼), 그래서 어떤 모험적인 제안에도 마음이 흔들릴 수 있는(惑), 상황에 놓여 있는 공자 자신의 심중을 솔직하게 고백한 대목이라는 것이다.
당시(唐詩) 300수를 강의하는 김윤(52) 선생. 서울대 재학 시절부터 치열하게 학생운동을 했고 대기업체 해외지사에서 근무한 현실 경험을 바탕으로 당시(唐詩)를 해석한다. 그는 당대의 시인들이 현실 정치에서 겪은 좌절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 당시라고 본다. 두보(杜甫), 이하(李賀)가 대표적이다. 이하의 '장진주(將進酒)' 첫머리 '琉璃鍾 琥珀濃 小槽酒滴眞珠紅'(투명한 유리잔에 호박빛깔 진한 술, 술통에서 떨어지는 술방울은 진주처럼 붉구나)은 현실 참여의 좌절을 탐미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대목이다. 남경우(56) 선생은 사상 체질을 강의한다. 자기 체질에 맞는 자연식품을 섭취하자는 것이 골자다. 젊었을 때는 아무거나 먹어도 되지만 중년부터는 체질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북촌학당을 출입하는 멤버들에게 적당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필자도 가끔 북촌학당에 가서 강의를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