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일간지는 최근 '한국 정부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남바린 엥흐바야르(56) 전 몽골 대통령이 한국으로 망명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외국 전·현직 국가 원수가 한국에 망명한 것은 처음'이라고 썼다.

지난 30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엥흐바야르 전 대통령은 "몽골에 있다가 이틀 전 한국에 왔다"며 "몽골과 한국을 오가지만 한국 망명설은 근거 없다"고 말했다. 이원집정부제인 몽골에서 2000년부터 4년간 총리를, 2005년부터 2009년까지 대통령을 지낸 엥흐바야르는 현재 야당(野黨)인 몽골인민혁명당 총재다.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는 2009년 대통령 퇴임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그의 망명설은 한 달 반 전 몽골 언론에 처음으로 났다. 이후 한국 언론이 보도하자 다시 몽골 언론이 재(再)인용하면서 확대됐다. 그는 "몽골에서는 한국의 드라마뿐만 아니라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데 한국 언론 보도 때문에 소문이 점점 커졌다"며 "변호사를 통해 (기사를) 정정케 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국 국적을 신청했다는 설에 대해서도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했다.

앵흐바야르 전 대통령은“몽골을 비롯해 남·북한, 중국, 일본, 러시아 6개국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그는“내가 몽골을 제외한 5개국 지도자 가운데 북한 김정은만 만나지 못했다”며 "비록 여러 가지 문제는 있지만, 이 모든 나라들의 협력 강화를 위한 촉매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서울의 한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심장과 뇌 관련 치료를 받고 있다. 국내 대기업의 몽골 투자에 조언도 한다. 딸은 국내 대형 로펌 인턴이다. 그는 "하지만 한국에만 머무르는 것은 아니고 몽골, 영국, 싱가포르에도 간다"고 했다.

한국을 자주 찾는 이유를 묻자 "한국의 빠른 발전을 배우고 싶다. 그래서 정치인, 기업인, 일반인까지 만난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 한국의 중장기 경제발전 전략과 교육을 꼽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국 경제를 키우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IT(정보기술) 분야를 발전시켰습니다. 저도 대통령 때 몽골의 중장기 발전계획을 세웠지만 지금은 제대로 추진되지 않아요. 몽골 정치가 멀리 보지 못하고 오늘만 생각하기 때문이죠."

엥흐바야르 전 대통령은 한국 기업뿐 아니라 해외 기업의 몽골 투자 자문에도 응한다. 대(對)몽골 투자를 늘리고 싶다고 했다. 그는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과 정치권의 불안으로 전반적인 경제 상황은 좋지 않지만 광산업이나 사회기반시설 분야는 충분한 투자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는 재임 기간 미국·한국·일본과의 관계 강화에 노력한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민주주의와 법치를 강조하는 정책으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몽골을 찾기도 했다.

대통령 재임 때 몽골로 들어온 탈북자에게 거처와 숙식을 제공하고 한국행도 허용했다. 그는 "국경수비대가 사막 지역에서 유골들을 발견했고, 짐을 수색하니 탈북자들인 걸 알게 됐다"며 "자유를 찾아 탈출한 사람들이 사막에서 탈진하거나 늑대에게 습격당하는 상황을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다"고 했다. 이어 "당시 북한도 이를 공개적으로 비난하진 않았다"며 "(탈북자 인권은) 정치적으로 민감하다며 덮어두고 쉬쉬할 수는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공산당 일당독재 시절의 몽골에서 태어나 민주화를 거쳐 총리·대통령까지 된 그는 북한의 개방과 민주화 가능성에 대해 "흐르는 물을 잠시 손으로 막을 수는 있지만 언젠가 그 물은 넘치기 마련"이라고 했다. 한반도 통일에 대해서는 "시기를 정확히 예상할 수는 없지만 동아시아 전체에 엄청난 기회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다만 시장개방과 민주화를 이루면서 혼란을 겪었던 몽골의 경험으로 볼 때 "한동안은 일국양제(一國兩制)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는 2009년 대선 패배 후 부패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당국이 변호사 접견을 허용하지 않았고, 이에 항의해 단식투쟁에 나서면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국제사면위원회 등 국제사회가 우려하기도 했다. 지난해 사면을 받은 그는 "앞으로는 정치적 활동보다는 동북아 협력, 경제, 문화 분야에서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불교 신자로 경전을 번역하는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그는 북한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선 "젊은 지도자는 용감하기 마련"이라며 "그가 용감함을 나쁜 쪽이 아니라 좋은 쪽으로 발휘해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