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고시 준비생 이선미(가명·32)씨. 3년차 지방 공무원인 남자 친구와 수십 번 싸우고 올봄에 결혼했다. 싸움의 원인은 주로 돈이었다. 신혼집 구하면서 싸우고, 신랑 집에 예단 보내면서 싸우고, 예단으로 보낸 돈 중 얼마를 돌려받느냐를 놓고 다시 싸웠다.
"신랑이 '되도록 작은 집을 얻자'고 하길래 제가 '서울도 아니고 지방인데…. 방 세 개는 되어야 한다'고 했어요. 저희 둘이 1500만원을 대출받고 시부모님이 5000만원을 보태줘서 제 뜻대로 했어요."
주위에서 "요샌 보통 집값의 10%를 현금으로 시댁에 보낸다"고 했다. 이씨는 500만원만 보내려다 1000만원을 보냈다. 시부모가 "300만원만 돌려주겠다"고 해서 양가가 한바탕 했다.
감정이 쌓이자 이어지는 과정도 계속 꼬였다. 시부모가 "다른 예물은 됐고, 유기 세트를 갖고 싶다"고 했다. 예단 때문에 한차례 다툰 뒤라 평범한 유기 대신 무형문화재 장인이 만든 유기를 사 보냈다. 그러면서 슬슬 오기가 생겼다. 유기를 보내면서 신랑에게 "요샌 다들 명품 가방 하나씩 들고 다니더라"고 했다. 시부모가 그 말을 전해듣고 명품 가방을 사주면서 "네가 이런 거 바라는 아이인 줄 몰랐다"고 한마디했다. 이런 식으로 양가가 집값 빼고도 예물·예단·혼수로 8000만원을 썼다. 그중 신랑·신부가 모은 돈은 2500만원이 채 안 된다.
통계청은 27일 "올 들어 8월까지 결혼 건수(20만1200건)가 2005년 이후 가장 적었다"고 발표했다. 경기 부진, 취업난 등으로 돈 없어 결혼도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본지가 여성가족부와 함께 전국 신랑·신부 600명과 혼주 600명 등 총 1200명을 조사해보니 큰돈 들여 무리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그 결과 양가 모두 두고두고 후유증을 겪는 악습(惡習)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두 가지 현상이 특히 두드러졌다.
무엇보다 다 큰 자식이 은퇴를 전후한 부모에게 기대는 관행이 당연한 것처럼 굳어지고 있었다. “부모가 능력 있으면 대줘야 한다”는 응답이 신랑·신부(64.8%)보다 혼주들(84.6%) 사이에서 더 많이 나왔다. 신랑·신부가 부모 도움 없이 자기 힘으로 결혼했다는 응답은 열 명 중 한 명에 불과했다(10.4%). 세 명 중 한 명이 “전체 결혼 비용 중 60% 이상을 양가 부모가 댔다”고 했다(33.5%).
머리로는 ‘우리 결혼 문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면 자신이 비판해온 그 행동을 똑같이 하는 현상도 뚜렷했다. 응답자 과반수가 “이상적인 결혼 비용은 집값 빼고 3000만원 미만”이라고 했는데(57.2%), 실제로 그만큼만 썼다는 사람은 다섯 명 중 한 명이 채 안 됐다(20.9%). 응답자 대다수가 “결혼 비용은 양가가 공평하게 내야 한다”면서도(68.2%) “그래도 신혼집은 남자가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62.8%).
신산철 생활개혁실천협의회 사무총장은 “말로는 ‘간소하게 하자’고 하면서도 자기 일이 되면 체면과 과시욕에 끌려가는 게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모습”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