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9시쯤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 1층에 모자를 쓴 중년 여성이 나타나 "내 자료 왜 못 뽑게 막아놨어"라며 고검 청사가 들썩들썩할 정도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검찰이 자신의 항고 사건 자료를 출력할 수 없게 막아 놔서 청와대와 대검 등에 진정을 냈다는 내용이었다. 청사 경비원이 달랬지만 이 여성은 2시간가량 더 소리를 지르고 점심때쯤 사라졌다. 서울고검 관계자는 "자기 자료는 그냥 출력하면 되는데 뭔가 오해를 한 것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법원과 검찰이 몰려있는 서초동 법조타운에는 재벌 총수나 국회의원 등 이른바 힘 있는 사람들은 오기를 꺼린다. 검찰 조사라도 한번 받으면 웃으면서 들어왔다가도 머리가 헝클어지고 초췌한 모습으로 돌아가는 곳이다. 그런데 유독 법조인들도 쩔쩔매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민원인'들이다. 민원인들은 판·검사를 겁내지도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만나서 자신의 사정을 호소하려고 한다.
법조타운에서 가장 유명한 민원인은 서울중앙지검 서문에 서 있는 중년 남성이다. 그는 지난 2002년 말부터 무려 12년 동안 거의 매일 팻말을 들고 서 있다. 이 남성은 사기도박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당시 자신의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검사 출신 변호사를 수사해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검사장급 이상이 타는 관용차의 차량번호까지 알고 있어서, 차량이 신호대기로 멈추면 차도에 나가서까지 90도로 인사를 한다. 지난 2003년 송광수 당시 검찰총장이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는지 알아보라"고 지시했으나, 검찰은 이 남성의 불만을 지금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중앙지법과 중앙지검 청사로 나눠 들어가는 길목인 일명 '삼거리'에는 판·검사 실명을 적어 들고 큰 소리로 육두문자를 사용하는 민원인들도 있다. 욕을 먹는 대상자는 대부분 자기 사건을 담당했던 판사나 검사들이다.
올해는 한 중년 여성이 확성기를 들고 서서 점심시간마다 밥 먹으러 나가는 검찰 직원들을 향해 '일장 연설'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작년 채동욱 검찰총장 사태 때는 정체불명 남성이 대검 정문 앞에 한 달 이상 매일같이 찾아와 '동욱아 집에 가자'라는 손팻말을 들고 대검을 향해 "동욱아~동욱아~"라고 소리지르기도 했다.
상당수 법조인은 "민원인들이 권력자뿐만 아니라 일반인은 문턱 근처에도 오고 싶어 하지 않는 곳에서 저렇게 행동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억울해서 그럴까 싶기도 하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