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기자 채용 시험 작문을 채점했다. 글제(題)는 '위선과 위악'. 명색이 채점자라는 사람이 난감할 만큼 까다로운 주제다. 우선 '짐짓 악한 체한다'는 '위악(僞惡)'의 뜻을 모르는 답안이 적지 않았다. 안다 해도 열에 셋꼴로 개그맨 박명수를 인용했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걸핏하면 핏대 세워 악역을 도맡는다고 한다. 틀린 인용은 아닐지라도 기껏 떠올린 게 오락 프로라니. 거꾸로 생각하면 변별력 높은 출제였던 셈이다.

▶철강왕 카네기는 직원 채용 시험에 화물 묶은 노끈 풀기를 집어넣었다. 끈을 차근차근 꼼꼼히 푼 사람은 불합격, 칼로 썩썩 잘라버린 사람은 합격시켰다. 카네기는 "스피드 시대에 끈 푸느라 시간 다 보내면 다른 일은 언제 보느냐"고 했다. 지금 세상은 그때보다 몇십 배 빨리 돌아가고 몇백 배 복잡하다. 카네기처럼 명쾌하게 사람 뽑을 처지가 아니다. 대기업 입사시험에 많게는 한 해 20만명씩 몰린다. 기업마다 인재 골라내려고 골머리를 앓는다.

▶며칠 전 현대차그룹 입사시험에 역사 에세이 문제가 둘 나왔다. '몽골과 로마제국 성장 과정에서 현대차가 배울 점' '우리 위인 중에 시대 상황에 의해 저평가된 인물'이다. 응시생이라 치고 곰곰 생각해 본다. 로마는 사방팔방 도로를 깔아 밖으로 뻗어 나갔다. 몽골은 길 없는 곳을 말[馬]로 전진했다. 개척하고 소통하고 다스렸다. 그러다 로마는 내치(內治)에, 몽골은 중국 본토에 머물면서 기울었다. 현대차도 끊임없이 세계로 나가 소통해야 살 수 있다.

▶둘째 문제는 더 어렵다. '시대 상황에 의해 새롭게 평가된 인물'이라면 몇 사람 생각난다. 어부 안용복은 독도, 관노(官奴) 장영실은 과학기술, 다산과 추사는 실학, 허난설헌은 여성에 대한 관심 속에 새삼 조명받았다. 좋은 답변인지 자신이 없다. 그나마 700자씩 40분 안에 써낼 수 있었을까. 현대차는 작년부터 역사 에세이를 출제한다. 그제 삼성그룹 공채 시험도 역사 문항이 늘었고 어려워졌다. SK·LG· GS·포스코도 마찬가지다.

▶'삼성 고시(考試)'만 해도 문제집이 63가지나 나와 있다. 학원에 다니고 과외를 받기도 한다. 기업들은 그런 단답형 맞춤 지식과 숫자투성이 '스펙'으론 인재를 가리기 어렵다고 깨달은 모양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차가운 기술을 넘어 따뜻한 감성과 깊은 통찰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꾸준히 책과 신문을 읽으며 쌓을 수 있는 것들이다. 입사시험이 역사와 인문학 소양을 중시하면 대학 공부도 자연스럽게 뒤따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