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에는 오랜만에 풋풋한 남자 게스트를 초대했다. 아담한 체구에 웬만한 여자보다 작은 손, 게다가 30대 후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동안 외모까지. 바로 마술사 최현우다. 브런치 토크 사상 최연소 독자인 10대 소녀들까지 모인 자리에서 그의 재치 넘치는 입담이 펼쳐졌다.

최현우의 등장에 독자들의 반응이 장난이 아니다. 브런치 토크 사상 독자 연령 평균 최저치를 기록(?)한 덕분인지 돌직구 질문도 서슴없이 오고 갔다. 이날, 공연이 열리는 부산에서 서울까지 잠깐의 짬을 내어 참석해준 최현우는 첫 끼니라며 허겁지겁 배를 채우는 와중에도 성실한 답변을 잊지 않았다. 모두가 ‘너는 안 될 거야’라고 했던 한 내성적인 소년은 어떻게 지금의 국제적인 마술사가 되었나.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다.

요즘 부산에서 매직콘서트를 하고 있던데 지역마다 관객들에 차이가 있나요?
그럼요. 우선 경상도 남자 관객들은 의심이 진짜 많아요. 속여봐라, 내는 못 속인다, 이런 거죠.(웃음) 대체로 조용해서 불붙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요. 전라도 분들은 리액션이 좀 더 좋은 편이에요. 서울 분들이 제일 까다로우세요. 아무래도 문화생활을 접하고 즐길 기회가 많아서인지 웬만큼 독특하다는 느낌이 안 들면 별로 안 좋아하세요. 그런 약간의 차이들이 있어요.

남녀 관객 비율이 어떻게 돼요?
제가 군대 가기 전, 그러니까 2006년까지는 연인 비율이 정말 높았어요. 근데 희한한 게 에 출연하고 나서는 가족 단위로 바뀌었어요. 젊은 분들도 여전히 많이 오시지만, 기존의 연인 중심에서 가족 단위 중심으로 넘어간 면이 있죠.

그럼 가족 단위 관객에 맞는 마술을 새로 짜기도 하고요?
일단 어려운 얘기는 못 해요. 마술은 지적인 게임이기도 한데, 그런 마술을 보여주려면 스토리가 있어야 하고 스토리가 있으면 호흡이 길어질 수밖에 없거든요. 근데 아이들은 긴 호흡을 못 따라오는 경우가 많아요. 집중도도 떨어지고요. 그래서 이번 공연은 초등학생 이상으로 연령을 제한했어요.

아예 19금 공연은 어때요?
안 그래도 하려고 했어요. 문제는 주관사들이 반대해요. 19세로 나이 제한을 두면 절반 정도의 표가 안 팔리니까 투자에 제한이 있거든요. 나중에 진짜 돈 많이 벌면 꼭 하고 싶어요.

마술 도구도 엄청 비쌀 것 같은데.
제가 몇 년 전에 깨달은 게 있어요. 무대 위에서 뿅 사라졌다가 객석에 나타나는 마술 있잖아요. 그 마술을 위해 사용되는 도구가 예를 들어 2천만원짜리였는데 돈을 좀 더 투자해서 4천만원짜리로 바꿨단 말이죠. 제가 봤을 땐 이게(4천만원짜리) 더 신기한 도구인데, 관객들은 차이를 거의 못 느끼더라고요. 둘 다 같은 걸로 인식하는 거죠.

사라지면 그냥 사라지는가 보다?
맞아요!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 어려움이 있어요. 미묘한 차이는 관객이 잘 모르니까 다른 방식으로 마술을 업그레이드시켜서 보여드려야 하죠.

지하철에서 껌 팔며 내성적인 성격 고쳐

최현우라고 어린 시절부터 지금 같은 재치 만점 달변가는 아니었다. 마술에 입문하던 스무 살 무렵, 내성적인 성격 탓에 “가장 먼저 마술을 그만두게 될 것”이라 외면 받았던 그는 무수한 장벽 속에서도 돌파구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지금의 최현우는 타고난 재능보다 가꾸어낸 재능이 훨씬 큰 셈이다.

어렸을 때 마술을 배우려고 가출했다고 들었어요. 중간에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은 적은 없었나요?
가끔 후배들도 '선배님은 슬럼프가 있었느냐'는 질문을 참 많이 해요. 근데 저는 단 한 번도 마술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도 가족이 보고 싶다거나….
(잠깐 머뭇하더니) 그러게요? 저, 나쁜 놈인가 봐요. (좌중 웃음) 언젠간 보겠지, 라는 생각으로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한때 반대했던 부모님이 지금은 가장 든든한 지원자일 텐데요. 어떻게 설득했나요?
제가 방송에 나오니까 자연스레 해결되던데요? (좌중 웃음) 어른들이 원래 매스컴에 약하시잖아요. 예전에는 '얘가 이걸로 밥 먹고 살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을 하셨다면 (방송에 나오는 걸 보고) '이젠 좀 하나 보네' 생각하시는 거죠. 지금은 제 나이도 있으니까 반대는 안 하세요. 공연도 매년 보러 오세요. 때로는 안 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제 마술을) 신기해하기보다 안쓰러워하세요. 아무래도 자식이니까, 땀 흘리면서 계속 뛰어다니는 걸 보면 안쓰러워하시죠.

실제로 보니까 외모도 그렇고 언변도 뛰어난데, 마술하려면 마술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다양한 재능이나 끼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무대에 서는 사람으로서 '내가 과연 마술에 재능이 있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처음 마술을 시작했을 때 선생님을 포함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네가 제일 먼저 그만둘 거라고 했어요. 재능도 없고 내성적이라 말도 잘 못했거든요. (다들 정말이냐며 믿지 못한다.) 지금처럼 여자 앞에서 말을 못했어요. 오랜만에 동창들 만나면 늘 하는 얘기가, 제 마술보다 제가 무대 위에서 말을 하는 게 더 신기하대요. 손도 보통 여자들 손보다 작아요. 마술을 하려면 손이 커야 뭘 감추든지 하는데 여러모로 악조건이었어요. 그래서 내린 결론이 이거예요. '나는 재능이 없으니 남들보다 열심히 해야겠다. 손이 작다? 그럼 입을 발달시켜야겠다.'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달은 게 제 재능인 것 같아요. 그때 뭐라고 하던 주변 친구들은 지금 다 (마술을) 그만두거나 안 하고 있어요.

무대 위의 쇼맨십이 타고난 줄 알았는데, 그게 다 노력의 결과군요.
많은 분들이 제가 무대 위에서 애드리브(즉흥적인 연기나 대사)를 하는 걸로 오해하세요. 근데 저는 애드리브가 하나도 없어요. 모든 게 다 (준비된) 대사예요. 상황별로 마련되어 있죠. 관객들은 완벽할 것 같은 마술사가 돌발 상황 앞에서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집에 가서 블로그에 남깁니다. '오늘은 아이가 우는 바람에 최현우 완전 당황.' (좌중 웃음) 근데 그게 다 준비한 액션들이에요.

내성적인 성격은 어떻게 지금처럼 바뀌었나요?
매일 아침 지하철에 들러 껌을 팔았어요. 한 6개월 정도 매일 했어요. '우리 아버지가 몸이 아프시고 집안이 어렵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매일 지어냈죠. 물론 사실은 아니고요.(웃음)

마술사를 꿈꾼 것치고는 특이하게 경제학과에 입학했어요.(그는 한국외대 경제학과 97학번이다.)
아, 그게 이야기가 길어요. 처음에 부모님이 원하는 학교와 학과에 입학했어요. 그리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갔는데 도저히 못 다니겠더라고요. 부모님께 자퇴하고 마술사를 하겠다고 하니까 집에서 나가라고 하셨죠. 그래서 가출하고 마술을 배우다가 처음으로 한 행사장에 마술을 하러 갔어요. 근데 진행하는 개그맨이 저를 이렇게 소개하더라고요. '오늘 특별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자, 무명의 고졸 마술사를 소개합니다!' 그때 되게 의아했어요. 마술과 학력은 아무 관계가 없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은 그렇지 않구나. (대학을 안 나오면) 안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어요. 그래서 그해 여름 수능 공부를 다시 해서 대학에 들어갔어요. 열심히는 안 다녔지만요.(웃음)

미국의 블록버스터, 영국의 블랙코미디
스페인의 카드 마술, 우리나라는 ‘이것저것 혼합형’

마술에도 음악처럼 저작권이 있다. 세계적인 마술사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마술 저작권을 사기 위해 무려 10년을 기다렸다는 최현우는 2012년 드디어 ‘어마무시한’ 금액을 지불하고 구입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리허설 중 공중에서 추락하는 바람에 쇼는 전면 무산. 그날의 상처가 지금도 ‘뼛속까지’ 남아 있단다.

최근에 멘탈 매직에 관한 책을 냈어요. 마술에 멘탈리즘을 접목한 건가요? (멘탈리즘은 심리학과 최면 등을 이용해 상대의 마음을 읽고 행동을 예측하는 것. 멘탈 매직은 이러한 멘탈리즘을 활용한 마술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마술에 원래 심리학이 많이 쓰여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뿐이죠. 예를 들면 무대 위에 미녀가 등장하잖아요. 왜 미녀가 등장하겠어요. 관객의 시선을 빼앗기 위해서죠. 의심을 흩트리기 위한 거예요. 그런 디테일한 심리학의 요소가 마술에 많이 쓰여요.

수많은 공연을 했는데, 가장 애착이 가거나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다면요?
애착이라…. 우선 다 맘에 안 들어요. 제가 원하는 대로 100% 구현이 안 되거든요. 고생을 많이 해서 기억에 남는 공연은 있어요. 작년 '셜록' 시리즈예요. 리허설을 하다가 4m 위에서 추락했거든요. (왼팔을 가리키며) 여기가 지금 다 철심이에요. 그날 공연의 엔딩이 데이비드 카퍼필드 형님의 마술이었는데, 너무너무 비싸서 10년을 기다렸다가 돈을 모아 간신히 샀거든요. 근데 보여드리기도 전에 추락하고 말았죠.

마술에도 저작권이 있어요?
마술사가 본인 혼자 다 마술을 만드는 게 아니에요. 가수처럼 작사가, 작곡가가 있고 리메이크 방식이 있어요. 돈을 주고 (다른 마술사가 개발한 마술을) 사 와서 각자의 캐릭터에 맞게 변형하는 거죠. 어떤 사람들은 저나 (이)은결이 혹은 다른 마술사들의 마술을 보면서 '저거 외국에서도 하던데 똑같이 따라 하네?'라고 생각하시는데, 사실 그 마술의 저작권을 사 와서 변주하는 거예요.

그렇게 사 온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마술을 연습하다 추락한 거군요.
8개월 정도 연습 기간이 필요한 마술이었는데, 연초에 연습을 시작해서 6월 29일인가 30일에 떨어졌어요. 떨어지고 나서 한 달 정도 공연이 취소됐어요. 그때 위약금 무느라 진짜 가슴 아팠죠. 참고로 올해 공연은 11월 8일부터 2015년 1월 4일까지입니다. (좌중 웃음)

평소에 주변에서 마술을 보여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은데, 그때마다 간단하게 하는 마술이 있나요?
보여달라는 분들의 마음은 잘 아는데, 지금은 외부에서 절대 (마술을) 안 해요. 저만의 철칙이기도 하고요. 사실 그런 스트레스 때문에 공개된 포장마차 같은 데도 잘 안 가요. 요청하시는 경우가 너무 많거든요. 근데 제 생각은 그래요. 방송이나 무대에서는 완벽한 공연을 보여줄 수 있는 조건이 되잖아요. 조명이나 음향 등 관객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요. 근데 그렇지 않은 자리에서는 그때와 비교가 되거든요. 누군가에게 제 마술이 인생의 첫 마술이라면, 좀 더 완벽한 조건에서 보여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만약 1주일의 휴가가 생긴다면 뭘 하고 싶어요?
사실 제가 휴가를 딱 한 번 가봤어요. 그동안 공연하러 25개국을 다녔는데 그중 휴가가 단 한 번도 없었거든요. 이러다가 정신병 걸리겠구나, 싶어서 3년 전 겨울 공연 끝나자마자 사이판에 갔어요. 스킨스쿠버를 했는데, 정말 대박이에요. 저 그거 하고 울었어요. 정신적으로 많이 힘든 때였거든요.

25개국을 다니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나라는요?
남아공이 대박. (좌중 웃음) 남아공 매직 컨벤션에 갈 일이 있어서 23세에 처음 케이프타운을 방문했어요. 지금도 아마 직항이 없을 텐데, 그때도 경유해서 서른 시간이 넘게 걸렸죠. 케이프타운이 아프리카로 치면 맨 끝이잖아요. 콜럼버스가 들렀다 간 희망봉이 있는 곳이고요. 정말 아름다워요. 청담동 거리에 바닷가가 있는데 그 위로 물개가 지나간다고 상상하시면 돼요. (좌중 웃음) 유럽의 귀족들도 다 그곳에서 휴가를 보낸다고 하더라고요. 물가도 싸서 그날 랍스타를 하루 종일 먹었네.(웃음) 케이프타운 꼭 가보세요.

데이비드 카퍼필드가 있는 미국의 마술은 어때요? 셜록 홈스의 나라, 영국 마술도 궁금하고요.
나라마다 약간씩 달라요. 미국은 큰 마술이 발달되어 있어요. 나라도 크고 워낙 자본이 집중된 쇼가 많아서요. 라스베이거스나 뉴욕 같은 도시를 떠올리면 돼요. 영화 가 전형적인 미국 마술이에요. 프랑스는 예술성이 있고 자부심이 대단하죠. 현대마술이 프랑스에서 시작됐거든요. 스페인은 희한하게도 전 국민이 카드 마술'만' 좋아해요. (좌중 웃음) 아마추어들도 카드 잘하는 사람이 정말 많고요. 영국은 블랙코미디, 지적 게임이 발달했어요. 전형적인 셰익스피어의 나라죠. 스토리가 길고 두뇌를 굴려야 하는데 답은 안 나오는. 그 나라도 좀 특이해요. 일본은 대형 마술보다 아기자기한 걸 좋아해요. 극도로 세심한 마이크로 분야에 집중되어 있어요. 가장 힘든 건 우리나라예요. 다 해야 돼요. (좌중 웃음) 우리나라 관객은 큰 것도 보고 싶은데 작은 것도 보고 싶어 해요. 반도의 특성 때문인지 취향도 중간이에요.

버티는 사람이 결국 승자

전 세계 25개국, 전국 수십 곳을 돌며 수백 수만 번의 공연을 돌았을 최현우가 마술의 진가를 깨달은 순간은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신기하고 재밌는 마술이 아닌 재단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그는 마술사라는 직업에 한없는 보람을 느낀다.

저희는 최현우 마술사 만나러 인천에서 온 고3 학생이에요.
고3이요? 이제 수능 100일도 안 남지 않았어요? 잠깐, 다다음 달인가?

60일 좀 넘게 남았어요.
지금이 제일 행복한 순간이에요.

지금도 힘들어요!
아니에요. 남의 돈 받으면서 일하는 게 제일 힘들어요. 학생은 주어진 일(공부)만 하면 되잖아요. 와, 그땐 진짜 편했는데.(웃음)

사적인 질문 하나 할게요. 마술로 여자 친구 만든 적 있나요?
하하하하하! (좌중 웃음) 야, 이거 어떻게 대답하나. 많을걸요? 거기까지. (좌중 웃음)

이상형은요?
음…. 예술(마술)이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 사실 마술사가 독특한 직업이잖아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일들을 해요. 꽤 복잡다단하고요. 그걸 이해하고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이상형이 아닐까 싶어요.

외적인 면은요?
아하하하하하하! 그걸 피해서 답한 건데.(웃음) 원래는 미란다 커나 제시카 고메즈(글래머러스한 몸매를 가진 대표적인 미녀들)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근데 요즘 혜리를 보면서 깜짝 놀랐어요. 귀엽더라고요. (최근 여군특집에 출연한 걸 그룹 걸스데이의 멤버 혜리의 애교가 화제가 됐다.)

정말 동안인데 피부 관리는 어떻게 해요?
하늘에 맹세하고 정말 안 해요. 그냥 키엘의 울트라 사이즈 수분크림 발라요. 그리고 제가 밖을 잘 안 돌아다녀요. 공연은 대부분 저녁에 있고 낮에는 회의하거나 집에 있다가 차로 공연장에 이동하니까요. 퇴근하면 밤이고요. 자외선을 못 봐요. 여러분도 태양을 조심하세요. (좌중 웃음)

보기에는 스트레스를 잘 안 받을 것 같은데, 혹시 스트레스를 받으면 해소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 있나요?
실제로 스트레스를 잘 안 받아요. 저번에 추락했을 때도 뼈가 다 부러져서 구급차에 실려 가면서도 '야, 근데 마술 도구 괜찮아?' 하고 물었대요. (좌중 웃음) 지나가면 그것도 인생에 있어 하나의 점 같은 것일 텐데, 굳이 거기 매달리면서 살 필요 있나 싶어요. 안 되면 '나랑 인연이 아닌가 보다' 하고, 그러다 보면 또 좋은 일이 생겨요. 늘 좋기만 하면 또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니 스스로 경계하기도 해요. 에이, 어머니도 잘 아시잖아요. (좌중 웃음)

인생사 새옹지마죠. 성공한 마술사인 데는 다 이유가 있네요.
저는 마술이 신기해서 시작했어요. 그래서 남들도 신기하니까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 계기가 있어요. 사실 이 얘긴 인터뷰에서 많이 했는데, 제가 한때 공연 중간에 연인 이벤트라는 걸 많이 했어요. 남자가 여자 친구 몰래 사연을 신청하면, 추첨을 통해 공연 중간에 프러포즈하는 시간을 마련해주는 거죠. 2005년 12월 23일에도 연인 이벤트가 열렸어요. 근데 프러포즈 받은 여자분이 계속 울면서 남자의 프러포즈를 두 번이나 거절했죠. 분위기가 싸해졌어요. 관객들도 저도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고요. 근데 남자분이 갑자기 마이크에 대고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저는 이 여자와 3년째 사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두 번 프러포즈했지만 둘 다 거절당했고요. 사실 얼마 전 병원에서 이 친구가 말기 암이라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이 친구의 남은 생이 6개월이 될지 내일이 될지는 모르지만, 남은 시간을 남자 친구가 아닌 남편으로서 옆에 있어주고 싶습니다. 오늘 이 친구와 인연을 맺게 된다면 아마 제 인생에서 가장 큰 마술이 아닐까 싶네요.' 저도 울고 모두가 울었죠. 그때 처음으로 '내 마술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구나. 나에게는 별거 아닐 수도 있는 마술이 누군가에게는 대단히 큰 의미가 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았어요.

주변에 마술사가 되고 싶다는 친구들이 있으면 뭐라고 조언해주나요?
가끔 제게 '우리 아들이 마술을 배우고 싶어 하는데 어떻게 해야 되나요? 돈을 얼마나 벌 수 있을까요?' 하는 메일들이 와요. 네이버에도 '마술사 연봉은 얼마나 되나요?' 하는 질문이 많이 올라오고요. 근데 저나 (이)은결 씨 모두 처음 마술을 시작하면서 이걸로 돈을 얼마나 벌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물론 돈은 중요한 것이지만, 수단이 될지언정 목적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근데 많은 학생, 학부모님들이 마술로 매월 얼마를 벌 수 있느냐고 물어요. 안정된 직업이 가능하겠느냐고요. 안정된 직업을 찾고 싶으면 첫째로 예술가를 하면 안 되죠. 공무원 시험을 보는 게 맞아요. 그렇지 않으면 곧바로 한계점에 부딪쳐요.

후배 마술사들에게 당부하고 싶거나 조언하는 점이 있다면요?
최근에 이현세 화백의 라는 자전적 에세이를 읽었어요. 후배들 중 자신의 재능에 대해 고민하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은데, 그 친구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어요. 책 안에 모든 정답이 다 나와 있거든요. 지금은 성공한 이현세 화백도 스무 살 무렵에는 너무 괴로웠대요. 본인은 밤새도록 수천 장의 그림을 그려도 맘에 드는 컷을 건지기가 힘든데, 어떤 친구는 밤새 술을 먹고도 다음 날 한 번에 그림을 완성해낸다는 거죠. 게다가 잘나기까지 하고요. 그래서 처음엔 스스로의 재능을 비관하며 좌절했대요. 근데 결국 내린 결론은 이거예요. 죽기 전까지 각자가 가진 재능의 총량은 대부분 똑같다고 해요. 많은 사람들이 재능을 먼저 찾고 그다음 꿈을 설정하는데, 실은 꿈을 결정하는 순간부터 재능이 있다는 거죠. 그게 누구는 10대에 발현되고 누구는 50대에 발현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술은 결국 오래 버티는 사람이 왕이래요. '재능의 총량은 같으니 그 길을 꾸준히 정직하게 걷다 보면 어느샌가 빛이 난다'고요. 개인적으로 너무 와 닿았어요. 그래서 자신의 재능에 대해 고민하는 후배가 있으면 항상 이 책을 권해요. 만화를 마술로 바꾸면, 그 책 안에 고민의 답이 있다고요. 결국 인생은 그런 거더라고요.

평생 마술사를 할 건가요?
그럼요. 이제 딴 길 못 가요. (좌중 웃음)

마술사 최현우는…
우리나라 대표 마술사. 2002년 국제마술사협회 마술컨벤션 코미디·클로즈업·쇼맨십 3관왕을 휩쓸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2009년 서울예술전문학교 마술팬터마임학과 교수, 2012년 FISM 월드 챔피언십 최연소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등 수십 개 방송에 출연했다. 4권의 저서를 발간했고 현재 부산 공연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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