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집들, 최고의 직장들이 몰려 있는 서울 서초구는 2009년부터 관내 미혼 남녀 간 단체 만남을 주선해왔다. 갈수록 낮아지는 출산율을 고민하다 "우선 결혼부터 시키자"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소개팅을 주관하는 구청 출산지원팀에는 6년째 해결이 안 되는 고민이 있다. '남저여고(男低女高)', 참가 희망자의 성비 불균형 문제다. 행사일 두 달 전부터 '서초구민이거나 서초구에 직장이 있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참가신청을 받은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남성 지원자 9명에 여성 지원자가 93명이었다. 선남선녀가 넘치는 이 동네에서 남녀 성비가 1대10으로 벌어지는 기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자칫 행사가 무산될 위기에 몰린 서초구청은 현대자동차·삼성전자·롯데건설 등 관내 대기업 인사팀에 "소개팅에 참여할 미혼 남성을 구한다"며 긴급 협조를 구했다. 그래도 24명 정원을 못 채워 구청의 미혼 남자 직원들까지 데려왔다. 반대로 여성 지원자들의 경우 93명 가운데 24명을 추리느라 진땀을 흘렸다. 결국 남성 참가자들의 평균 연령 32.4세에 맞춰 여성 참가자를 뽑았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30.5세였다.

8일 오후 서울 서초구의 한 웨딩홀에서 서초구가 주최한‘솔로탈출 대작전! 굿바이~솔로 미팅파티’참가자들이 맞은편 이성과 손바닥을 맞대는 게임을 하며 친분을 쌓고 있다. 이 행사에는 서초구민이거나 서초구에 직장을 둔 20~30대 남녀 48명이 참가했으며, 6쌍의 커플이 탄생했다.

그렇게 선발된 48명이 8일 오후 7시 서초구 한 결혼식장에 모였다. 한 결혼정보업체 관계자는 "부자 동네인 서초구나 강남구는 거기 살기만 해도 좋은 등급을 받는데 이날 참가한 남녀들은 대부분 서울에서 4년제 대학을 나와 직업도 교사, 공무원, 대기업 사원 등 A급이어서 결혼시장에서도 최상위 스펙"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 여성 참가자는 "구청에서 주관하니 사설 결혼정보업체에서 하는 행사보다 믿음이 가고 대기업 인사팀에서 추천받은 남자들도 많이 나오니 왠지 더 호감이 간다"고 말했다. 참가자 모집 땐 다른 구에 사는 부모들이 "빈자리가 있으면 내 딸도 꼭 넣어달라"며 간곡하게 요청하기도 했다. 서초구 여성가족과 김이량 주무관은 "여성 참가자 가운데는 부모님이 직접 전화해 대신 신청한 사례가 많았다"고 말했다.

미팅은 4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 12개에 여성 2명이 앉고 남성 2명이 5분마다 테이블을 옮겨다니면서 '2:2 대화'를 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24명의 이성과 모두 대화를 마치고 난 뒤 마음에 드는 상대 3명을 쪽지에 적어서 제출하면 짝이 결정된다. 2시간 30분 남짓한 마라톤 대화가 끝나고 최종 선택의 시간이 왔다. 총 여섯 쌍이 맺어졌는데 남녀 각 1명에게 표가 쏠렸다. 행사 진행을 맡은 결혼정보업체 닥스클럽 관계자는 "남자 22호와 여자 9호가 10표씩 받았다"며 "현장에서 가장 잘생기고 예쁘다는 평가를 받은 남녀"라고 귀띔했다.

여성들의 몰표를 받은 남자 22호(32)는 주민센터에 근무하는 공무원으로 '2:2 대화'에서도 예의 바르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준 '훈남'이었다. 남심(男心)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여자 9호(29)는 초등학교 교사로 '어리고 예쁜' 스타일이었다. 여자 9호 역시 남자 22호를 1지망으로 선택했으나 2지망이었던 남자 19호와 짝이 됐다. 남자 19호는 명문대 출신의 대기업 사원이었다. 남자 22호가 제출한 쪽지엔 1, 2, 3지망란이 전부 비어 있었다. 그는 "상대를 알기에는 대화 시간이 너무 짧았다"고 했다.

가장 많은 표를 받았던 남자 22호가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여성들은 실망한 표정이었다. 미팅이 끝난 오후 10시. 행사장을 나서던 한 30대 초반 여성이 다른 여성 참가자에게 속삭였다. "이럴 줄 알았어요. 괜찮은 남자 만나려면 결국 어리고 예뻐야 하는 거네요."

김두섭 한양대 사회학과 교수는 "서초구청 미팅은 남자는 최하위 조건자만 남고 여자는 최고 조건자만 남아 '골드미스'가 늘어나는 결혼시장 피라미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사회에서 어느 정도 지위를 갖춘 남자들은 가정에서도 편하게 주도권을 행사하고 싶어 해 자신과 비슷하거나 더 우월한 여자는 안 만나려 하는 게 동서양의 공통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결혼정보업체 듀오의 박수경 대표는 "서초구청 미팅의 성비 불균형은 고소득, 전문직 결혼중개 시장의 전형적 특징"이라고 말했다. 고소득, 전문직 남성들의 경우 나이에 비례해 지위와 소득도 높아 굳이 단체 미팅에 나오지 않아도 여성을 만날 기회가 많은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박 대표는 "조건이 좋은 30대 남성들은 보통 2년쯤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데 연애 기간과 결혼한 뒤 출산할 나이까지 감안해 서른이 넘은 여성을 잘 만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