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이 (2010년 11월) 방한을 위해 비행기에 탑승하기 직전 대가 없이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하겠다는 어려운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고 가는 동안 정작 우리 문화재청이 차관회의에서 이를 거부하는 바람에 본부에서 재교섭하라는 훈령이 떨어졌습니다."
조선왕실의궤(朝鮮王室儀軌·왕실 행사를 글과 그림으로 정리한 책) 등 외규장각 도서를 둘러싸고 19년 넘게 이어지던 한국·프랑스 간 줄다리기에 종지부를 찍고 도서 반환을 성사시킨 박흥신(60·사진) 전 주(駐)프랑스 대사는 "재교섭은 결렬을 의미했다"고 말했다.
당시 문화재청은 반환 방식을 문제로 삼았다. 영구 반환이 아닌, '대여' 형식의 반환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박 전 대사는 "하지만 프랑스 법률상 문화재 양도는 불가능했다"며 "(대여가 싫으면) 프랑스 법을 바꾸든지 무력으로 탈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이 위기는 대여 방식을 수용해야 한다는 외교부 입장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받아들이면서 넘길 수 있었다고 한다. 박 전 대사는 "내교(內交)가 외교보다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외규장각 도서 반환 교섭 당시 "외규장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양국 간의 영원한 가시로 남을 것"이란 논리로 프랑스 측을 설득했다고 말했다. "KBS '도전 골든벨'을 보는데 외규장각 도서가 역사 문제로 나오더라고요. 그걸 보고 프랑스 측 인사들에게 '의궤 문제는 자라나는 학생들에게도 가르치는 것이다. 덮어놓고 모른 체한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설득했지요."
경제 논리도 동원했다. "외규장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제2의 테제베(프랑스 고속철)는 없다"는 박 전 대사의 말에 프랑스 경제계 인사들도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노력들 덕에 한국과 프랑스 정상은 2010년 11월 12일 정상회담에서 프랑스에 보관 중인 외규장각 도서를 '5년 단위 갱신(更新) 가능 일괄' 방식으로 한국에 돌려주기로 합의, 이듬해 3~5월 4차례에 걸쳐 297책이 서울에 돌아왔다. 병인양요(1866년) 때 약탈당한 지 145년 만이다. 박 전 대사는 최근 외규장각 의궤 반환 협상 과정을 다룬 책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