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을 걷는다는 건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빼내는 것’이라는 정부 고위 관료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세금을 최대한 많이 걷으려는 정부와 세금을 조금이라도 덜 내려는 납세자들의 ‘머리싸움’은 시대를 불문하고 언제나 치열하다. 한국에서는 담뱃세·주민세 등 서민 증세 문제를 두고 치열하게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밖으로 눈을 돌려 미국과 유럽에서는 구글, 애플, 스타벅스, 버거킹 등 다국적 기업의 조세 회피가 초미의 관심거리다.
◆ 구글·애플·스타벅스 vs 유럽연합
다국적 기업들의 뿌리깊은 조세회피 행위가 본격적으로 도마 위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2012년. 당시 스타벅스가 영국에서 14년 동안 30억파운드(약 5조1166억원)의 매출을 올리고도 세금은 860만파운드(약 147억원)만 냈다는 자료가 공개되면서 거센 항의 시위가 잇따랐고, 이를 계기로 각국 정부도 대책 마련에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다국적 기업들의 절세 전략은 ‘복잡한 사업 구조를 구축해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뿐 아니라 자국 내에서 벌어들인 돈을 모두 조세 회피처로 옮겨 적은 세금을 낸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가령 ‘더블아이리시·더치샌드위치(Double Irish Dutch Sandwich)’라 불리는 애플과 구글의 절세 전략은 지금도 유럽연합(EU)이 집중 조사를 벌이며 단단히 벼르는 사안이다. 애플과 구글은 아일랜드에 미국 법인용과 해외 법인용을 각각 만들어 미국과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모두 영국령 네덜란드 법인을 거쳐 버진 아일랜드나 버뮤나 등 조세회피처(tax haven)에 몰아주고 있다. 굳이 복잡하게 네덜란드 법인을 중간에 끼우는 이유는 돈이 아일랜드에서 바로 조세 회피처로 향하면 현행법상 세금 폭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며 다국적 기업들의 조세회피를 둘러싼 비판이 거세지고 있지만, 기업들은 정부의 고루한 세법 체계가 문제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애플의 조세 회피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던 지난해 여름,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비판 여론을 등에 업은 미국 의회의 소환장을 받고 대중 앞에 섰다. 예상대로 애플이 세금을 지나치게 적게 낸다는 의원들의 지적이 쏟아졌지만, 팀 쿡은 시종일관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표정을 지으며 “애플은 미국에서 법인세를 가장 많이 낸다”고 했다. 오히려 미국의 높은 법인세(35%)를 다 낼 수는 없기 때문에 아일랜드에 쟁겨둔 1000억달러의 수익을 미국으로 환수할 계획이 없다고 맞섰다.
이는 정부와 기업 간 역학 관계가 역전된 결과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정부가 기업을 쥐락펴락했던 것과 달리, 지금은 기업들의 해외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세금을 낼 국가도 마음대로 고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절세’하려는 것을 정부가 막을 수는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지만, 일부 비판론자들은 기업들의 논리대로라면 저세율 국가에서만 영업 활동을 해야지 세금을 낼 지역을 입맛대로 골라서는 안 된다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달 초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애플이 아일랜드 정부와 1991·2007년 밀실협약을 통해 경쟁기업들이 누리지 못하는 세금 특혜를 보고 있다'며 거액의 벌금을 물리겠다는 뜻을 밝히는 등 애플과 EU 간의 다툼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아일랜드의 명목 법인세율은 12.5%지만 애플은 2%만 냈다는 게 EU가 최근 내린 결론이다.
◆ 美 전통 기업들도 뒤따라 세금 피해 해외로
지난해까지는 애플이나 구글 등 주로 무형자산을 판매하는 실리콘 밸리 기업들이 조세회피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가운데, 올 들어서는 제약, 식·음료 등 전통적인 산업분야의 기업들도 뒤따라 적극적으로 조세 회피 행렬에 동참하면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흔히 ‘인버젼(inversion·납세지 변경)’이라 불리는 미국 기업들의 조세회피 수법은 법인세율이 낮은 나라로 본사를 옮겨 법인세를 적게 내는 게 핵심이다.
올 초부터 아스트라제네카, 애브비, 버거킹 등 미국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수십개의 대기업들이 잇따라 인버젼을 통해 세금을 덜 내려 하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올해 7월 공개적으로 이들을 “이익을 위해 국적을 포기하는 탈영병”이라 부르며 “이들은 미국 시민권을 포기한 것이며, 미국 납세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그동안 침묵을 지켜오던 오바마 대통령이 조세 회피문제에 대한 여론전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반대편에 선 공화당과 보수 우파들은 "가뜩이나 경기도 안 좋은데 기업들의 부담을 늘리고 있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 상위 1%에 연평균 4만5000달러의 세금을 줄여줬던 부시 정권과 비교하면, 기업 입장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우회적 증세’가 달가울 리 없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이 역대 최저로 떨어지는 상황 속에서, 의회의 지원 사격 없이 행정부만의 힘으로 기업들의 엑소더스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달 22일 기업들의 해외 본사 이전 요건 강화를 골자로 하는 행정 조치를 마련했지만, 대다수 전문가는 이번 조치가 미국 기업들의 편법적 절세를 모두 막을 수는 없다고 평가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경제적 애국심’까지 언급한 것은 올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기업들에 징벌적 조치를 강조함으로써 표심을 다독이기 위한 것이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그러나 중간 선거 이후에도 미국 정부가 기업들의 ‘비애국적 행동’에 얼마나 더 제동을 걸 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