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2일 미국 내 첫 에볼라 감염 확진 환자인 토머스 에릭 덩컨(42·라이베리아인)이 지난 2주간 미국인 100명 이상을 직·간접적으로 접촉한 것으로 파악하고, 이들에 대한 대면(對面)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들의 감염 사실이 확진되면 아프리카를 제외한 국가에서의 첫 감염 사례가 된다. 비(非)아프리카도 에볼라 바이러스의 안전지대라고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잠복기를 모르고 여행하는 환자가 앞으로도 있을 수 있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보건 당국이 긴장하고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자체 치사율이 90%에 이르는 데다 올해 서아프리카 3개국(라이베리아·시에라리온·기니)의 발병 지역이 인구 밀집 지역에 특유의 신체접촉 문화 탓에 감염자 7100여명, 사망 3300여명으로 역대 최대 피해를 낳고 있다. 아직까지 특별히 효과 있는 치료제도 없는 상황이다.
◇잠복 상태로 美 입국 10일 만에 확진
덩컨은 지난달 20일 에볼라 발생 지역인 서(西)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서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미국 텍사스주(州) 댈러스에 왔다. 이 과정에서 그는 벨기에와 미국 워싱턴의 국제공항 등을 경유했다. 미국 도착 후 나흘 만에 고열·구토 증상을 보인 그는 지난달 25일 병원을 찾았고, CDC는 지난달 30일 덩컨이 에볼라 확진 환자라는 점을 공표했다.
덩컨은 주로 가족과 함께 아파트 내에 머물렀는데, 접촉자 수가 100명까지 늘어난 것은 병원의 초기 대응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증상을 자각한 직후 병원을 찾아 "라이베리아에서 왔다"는 말까지 했는데도 병원 측은 가벼운 바이러스 감염으로 여겼다. 항생제만 처방해 돌려보냈지만, 그는 이틀 뒤 증세가 악화돼 긴급 후송됐다. 이 과정에서 병원 관계자 상당수도 덩컨과 접촉했다.
◇'방역대책 무용론' 제기
'에볼라 공포'에 휩싸인 미국에서는 초기 검역 체계, 발병 후 처리 과정, 후속 조치 모두에 문제가 있었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선 덩컨이 미국으로 들어오는 과정에 대한 문제 제기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에볼라가 창궐하면서 라이베리아 공항에서만 3번의 체온 측정을 한다. 잠복기 상태에서 덩컨은 정상이었다. 공항 측이 '(에볼라 최대 잠복기인) 21일 내에 에볼라 환자와 접촉한 적이 있느냐'고 질문하자 그는 "그런 적이 없다"고 답했다. 덩컨은 출국 직전 에볼라에 감염된 임신부의 후송을 도운 적이 있는데 거짓말을 한 것이다.
미국이 중태로 알려진 덩컨이 사용한 수건과 침대 시트 등을 방치한 것도 문제다. CNN은 3일 "수거 업체가 아파트를 찾았지만, 텍사스주가 수거 관련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어 격리된 가족들의 2차 감염이 우려된다"고 보도했다. 덩컨과 접촉한 '잠재적 환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 보건 당국이 제대로 파악을 못 해 처음에는 12~18명을 언급하다 100명까지 늘어난 데 대해서도 불신이 커지고 있다.
◇선진국 에볼라 창궐 가능성 낮아
가장 큰 우려는 에볼라를 포함해 아프리카에 한정됐던 여러 질병이 세계로 퍼지는 게 아니냐는 점이다. 그동안 미국인과 유럽인이 에볼라 확진 판정을 받긴 했지만 다 아프리카 내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덩컨에 의해 다른 지역에서 전염이 일어나면 아프리카 특유의 환경을 탓하기가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여러 다른 풍토병들에 대한 경고음까지 울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라이베리아에서 NBC 방송을 위해 일하던 미국인 프리랜서 카메라맨(33세)도 에볼라에 감염돼 미국으로 이송될 예정이라고 방송사 측이 밝혔다. 라이베리아에서 에볼라에 감염된 4번째 미국인이다.
미국 내에서는 서아프리카로의 여행이나 항공기 운항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백악관과 보건 당국은 "에볼라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며 일축하고 있다. 실제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 아프리카 같은 전염 창궐 사태로 이어지리란 추측은 무리다. 우선 에볼라 바이러스는 침·땀 같은 체액, 분비물, 혈액 등을 매개로 감염된다. 호흡기로 감염되는 사스(SARS)나 조류인플루엔자보다는 전염성이 약하다. 특히 선진국은 아프리카보다 인구가 덜 밀집돼 있고 감염자 격리와 소독·치료, 역학관리 등 보건 환경이 낫기 때문에 급속도로 창궐할 가능성은 훨씬 낮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