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칙연산은 실화를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의 핵심이다. 실제 이야기에서 어떤 부분은 빼야 하고 반대로 새로운 내용을 추가해야 한다. 취사선택한 사실과 허구를 곱하고 나눠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로 창조해야 한다. 좋은 실화 영화는 이렇게 탄생한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2010년 작 '소셜네트워크'와 베넷 밀러 감독이 2011년에 내놓은 '머니볼'이 보기다. 두 영화가 흥미로운 지점은 남다른 시선이다. '영화적 사칙연산'을 통해 평면적인(평면적으로 보이는) 사실을 다층적인 이야기로 재창조한다는 데 있다.
'소셜네트워크'는 마크 주커버그가 페이스북을 만드는 과정을 단순히 IT 사업가의 화려한 성공기로 다루지 않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주커버그의 외로운 뒷모습은 이 영화의 제목이 왜 '주커버그'가 아닌 '소셜네트워크'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줬다.
'머니볼'도 그렇다. 영화는 빌리 빈이 세이버메트릭스 이론을 도입해 야구팀을 성공으로 이끄는 모습만을 담지 않았다. 빌리 빈이라는 인물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야구와 접목해 삶을 향한 보편적인 메시지를 이끌어냈다. 조명이 꺼진 야구장에 홀로 앉아 있는 빌리 빈의 모습이 영화를 본 뒤에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유다. 임순례 감독의 새 영화 '제보자'는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창작물이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이 사건은 단순한 논문 조작 사건이 아니다. 인간의 욕망과 맹신, 국론 분열 등이 한 데 뒤엉켜 최악의 복마전을 만들어낸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제보자'의 실화는 이미 매우 입체적이다.
취재 아이템을 찾던 '피디추적'의 윤민철 PD(박해일)는 불법 추출한 난자가 한 병원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을 포착한다. 그 병원은 줄기세포 연구로 난치병 해결에 앞장서는 이장환 박사 연구팀과 제휴한 곳이다. 그러던 중 윤 PD에게 제보가 들어온다. '줄기세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윤민철 PD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취재에 나선다.
'제보자'는 빠르게 흐른다. 좀처럼 지체하는 법이 없다. 시작하자마자 본론으로 들어가 끝까지 밀어붙인다. 지루할 틈이 없다. 인물의 전사를 설명한다든가 줄기세포가 무엇인지 설명하느라 러닝타임을 허비하지 않는다. 진실에 점차 다가가는 시사고발프로그램 PD와 그에게 결정적 제보를 한 전직 연구원, 이들의 추적을 막으려는 이장환 박사간의 공격과 수비가 마치 탁구공이 쉴새 없이 테이블 위를 오가듯 전개된다.
사전 정보 없이 '제보자'를 본 뒤, 이 영화를 임순례 감독이 연출했다는 것을 알면 놀랄지도 모른다. 영화는 주로 곡선적인 영화를 만들어오던 임 감독의 스타일과 거리가 있다. 하지만 임순례의 인장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영화의 유머 감각은 극의 에너지와 함께 또 다른 장점인데, 이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임 감독 특유의 시선과 맞닿는다. 언뜻 영화 속 인물을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구분한 것처럼 보이나 특별히 증오할만한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임순례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간접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속도와 에너지, 유머가 적절히 조합된 '제보자'는 언론 스릴러로써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를 준다. 하지만 그만큼 더 영화적일 수 있었던 많은 부분을 포기했다. 그 결과는 '제보자'는 재미는 있지만 울림은 작은 영화가 됐다.
스릴러 영화를 만드는 데 왜 울림이 필요하냐고 되물을지 모른다. 문제는 결국 이 영화가 소재로 쓰는 실화에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은 한 교수가 논문을 조작했고 그것을 직업의식이 투철한 언론인이 밝혀냈다는 것으로 끝나는 사안이 아니다. 오히려 그 보도가 만들어낸 파장이 대한민국과 여론을 어떤 혼란 속으로 내몰았느냐 하는 것이 이 사건의 중심이다.
'제보자'는 이장환 박사에 대한 첫 보도가 나가기까지의 이야기만 다룬다. 정작 실화에서 중요한 것은 모두 빠져있는 형국이다. 황우석 박사 사건을 기대하고 표를 산 관객이라면 조금은 실망할 수 있다. 물론 감독의 선택은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더하고 뺀 뒤, 곱하고 나눠 더 다양한 겹의 이야기가 될 수 있었던 '제보자'를 임순례는 너무 단순한 언론인 이야기로 만들어버렸다.
윤민철 PD는 고민이 없어 보인다. 그는 오로지 방송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매달린다. 윤민철의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를 믿는 사람이 있고 믿지 않는 사람만 있다. "진실과 국익 중 뭐가 더 중요하냐"는 윤민철의 질문에는 언뜻 심오한 고민이 있어 보이지만 대답을 너무 쉽게 해버림으로써 문제를 단순화한다.
이장환 박사는 논문을 조작하고 국민을 속이고도 당당한 철면피 정도로 묘사된다. 자신이 유전자 복제로 만든 개에게 "너무 멀리 왔다"고 고백하는 장면을 넣기는 했지만 큰 의미는 없어 보인다.
'제보자'는 사칙연산 중 '빼기'만 사용해 만들었다. 데이비드 핀처와 베넷 밀러가 단면적인 실화를 입체적인 텍스트로 만들어냈다면 임순례는 그 어떤 텍스트보다 입체적인 실화를 단순한 이야기로 격하했다.
이장환 박사를 연기한 이경영은 최적의 캐스팅이다. 이경영은 최근 너무 많은 영화에 출연한다는 비판 아닌 비판을 받고 있지만 '제보자'에서 만큼은 이견을 달기 힘들다. 빠르게 달리는 극을 특유의 묵직한 연기로 잡아준다. 특유의 목소리와 발성, 미묘한 표정 변화는 이장환이라는 캐릭터에 생기와 온기를 불어넣는다.
박해일의 연기는 흠 잡을 데 없다. 눈빛과 목소리에서 에너지가 넘친다. 특히 윤민철(박해일)과 심민호(유연석)가 맞부딪히는 장면에서의 대사 리듬감은 그가 왜 좋은 배우인지를 증명한다. 유연석은 조금 아쉽다.
'제보자'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영화다. 줄기세포 스캔들 이후 10년이 지났다. 이 사건은 아직 종결되지 않았다. 그리고 진짜 '황우석 영화'도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