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를 준 언니와 한마음으로 뛰었어요." (리커브 이특영)
"감독님이 하늘에서 지켜줄 거라 믿었습니다." (컴파운드 최보민)
'아시아 최강' 자리를 지킨 여자 양궁 선수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27일과 28일 양일간 인천 계양아시아드양궁장에서 펼쳐진 인천 아시안게임 여자 양궁의 컴파운드와 리커브는 한국의 금메달 잔치로 막을 내렸다. 각 종목 개인전과 단체전에 걸린 4개의 금메달을 독식했다. 리커브와 컴파운드 개인전 결승에선 한국 여자 선수끼리 우승을 놓고 대결했다. 한국 여자 양궁이 잔칫날 '울음바다'를 이룬 건 영광을 같이 누리지 못한 언니와 스승 때문이었다.
◇'맏언니'의 양보에 금빛 화답
이특영(25·광주시청)은 고등학교 때 '천재 궁사'로 이름을 날렸다. 2005년 세계선수권에서 15세의 나이로 국내 양궁 사상 최연소 우승(단체전)을 차지하면서 주목받았다. 한국 양궁의 미래로 꼽히던 이특영은 고교 졸업 후 긴 슬럼프에 빠졌다. 부담감을 극복하지 못해 국내 선발전에서 번번이 떨어졌다. 인천 아시안게임은 2007년 세계선수권 이후 7년 만에 다시 태극 마크를 달고 나서는 국제 대회였다.
이특영은 절치부심하고 나선 이번 대회 퀄리파잉라운드에서 간발의 차로 눈물을 흘렸다. 3위를 기록한 그는 국가별 상위 2명에게 주어지는 본선행(行) 티켓을 놓쳤다. 한국에선 정다소미(24·현대백화점)와 장혜진(27·LH)이 전체 1·2위를 차지해 본선에 나갔다. 국내 선발전과 아시안게임 예선 성적을 합산해 3명에게 주어지는 단체전 출전권은 정다소미·장혜진·주현정(32·현대 모비스)에 밀려 놓쳤다.
일찍 짐을 싼 이특영은 '맏언니' 주현정의 양보로 활을 다시 잡았다. 오른쪽 어깨 통증으로 출전을 포기한 주현정은 "팀을 위해선 내가 빠지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며 "아시안게임을 위해 아픈 걸 참고 훈련했던 걸 생각하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초·중·고 선배 주현정 대신 나선 이특영은 28일 결승에서 중국을 세트 스코어 6대0으로 완파하는 데 힘을 보탰다. 이특영은 "현정 언니가 우리가 금메달 따는 꿈을 꿨다고 해준 덕분에 힘을 냈다"고 말했다.
◇하늘로 쏘아 올린 금메달
작년 10월 컴파운드 양궁 세계선수권이 열린 터키 안탈리아에선 비보(悲報)가 전해졌다. 프랑스와의 단체전 8강 경기 도중 뇌출혈로 쓰러진 신현종 감독이 결국 목숨을 잃었다. 아버지처럼 따르던 은사(恩師)의 급작스러운 죽음에 대표 선수들은 슬픔에 빠졌다. 가장 충격이 컸던 건 당시 소속팀 청원군청에서 신 전 감독과 10년간 한솥밥을 먹었던 최보민이었다.
리커브 세계선수권 단체전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최보민은 2008년 컴파운드 선수로 전향했다. 어깨 부상으로 은퇴를 고려하던 최보민을 컴파운드로 이끈 게 신현종 전 감독이었다. 최보민은 이름까지 은영에서 보민으로 바꿀 정도로 마음을 다잡았다. 이후 신 전 감독의 지도를 받으면서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했다. 최보민은 "그날 경기에서 내가 0점을 쏘는 순간 감독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며 "나 때문에 감독님이 돌아가신 것 같아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스승을 잃은 아픔을 딛고 일어선 선수들은 대회 직전 청주에 있는 신현종 전 감독의 묘소를 찾아 '금메달을 들고 다시 찾아오겠다'고 다짐했다. 그러곤 약속을 지켰다. 최보민·석지현(24·현대모비스)·김윤희(20·하이트진로)로 꾸려진 여자 대표팀은 27일 결승에서 대만을 229대226으로 꺾고 정상에 섰다. 우승을 확정 지은 후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면서 신 전 감독을 기린 선수들은 "하늘에 계신 감독님이 우리를 자랑스럽게 지켜보실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양궁은 이번 대회를 금 5, 은 3, 동 1개의 성적으로 마쳤다. 여자부에선 리커브의 정다소미와 컴파운드의 최보민이 단체전과 개인전을 석권해 대회 2관왕을 차지했다. 리커브 여자 대표팀은 대회 단체전 5연패를 달성했다. 남자부에선 리커브의 오진혁(현대제철)이 28일 결승에서 중국의 용지웨이를 세트 스코어 6대4로 따돌리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