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현지 시각) 헝가리 데브레첸 국립치·의과대학(이하 ‘데브레첸 의대’) 내 흉부외과 수술실. 심근에 피를 공급해주는 관상동맥이 막힌 환자에게 새로운 혈관을 만들어주는 CABG수술을 하고 있었다. 기능이 떨어진 심장 혈관을 제거하고 다리 혈관을 떼어다 이식하는 작업이다. 의사, 마취 의사, 수술 간호사 등으로 구성된 의료진의 손길이 분주했다. 수술실 2층에 설치된 유리벽에서 이 광경을 내려다보던 루돌프 콜로스바리 교수는 “이 중요한 수술이 하루에도 몇 번이나 있다”고 했다. 이곳 의대에 재학 중인 한국 학생들도 환자의 열린 다리를 한 땀 한 땀 봉합하는 의사의 손놀림을 자세히 관찰했다.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자동차로 2시간을 달려 만난 데브레첸 의대의 모습이다.
지난 6월 보건복지부는 헝가리 데브레첸 의대 졸업생에게 국내 의사면허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기로 결정했다. 이곳의 교과과정 체계와 수준을 인정한 것이다. 데브레첸 의대가 있는 데브레첸시(市)는 인구 20만 명이 사는 헝가리 제2 도시다. 지난 5월 개장한 너지에르데이 스타디움을 비롯해 도시 곳곳을 보수한 덕분에 전체적으로 깔끔했다. 데브레첸 의대 건물들 역시 최근 리모델링을 끝냈다. 유럽의 예쁜 가정집처럼 생긴 건물 안에 내과나 흉부외과 강의실이 들어서 있었다. 안내를 맡은 학교 홍보팀 도라 수츠씨는 "우리 학교는 WHO(세계보건기구) 등 국제기구의 지속적인 관리를 받는다"며 "시설부터 커리큘럼까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국인 유학생 박지욱(22세)씨는 "시설은 최첨단이지만 미국 의대의 5분의1 수준인 저렴한 학비가 큰 장점"이라며 "1년 학비는 1600만원 선"이라고 말했다.
총 6년인 의대 교육과정은 헝가리인을 위한 과정과 외국인을 위한 영어 과정으로 나뉘어 있다. 두 과정은 언어 외엔 차이가 없다. 특히 탄탄하게 구성된 기초과정이 특징인데, 저학년 때부터 해부학 수업 등 실습이 활발하다. 이곳에서 연수 중인 한국인 의사 하모(34세)씨도 "저학년 커리큘럼은 한국 의대보다 경쟁력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 대학 학생의 미국 의사면허시험(USMLE) 합격률이 90% 이상일 정도로 학업 수준도 높다. 헝가리에서도 최상위권 학생이 입학하지만, 각 상급 학년 진급률은 전체 50%를 밑돈다. 6학년에 재학 중인 박지민(26세)씨는 "한국 의대보다 쉬울 거라는 생각으로 온다면 1, 2학년을 채 마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데브레첸 의대에는 100여 명의 한국 학생이 재학 중이다. 이들의 성적은 상위 30% 안팎이다. 진급률이 최고 90%에 이른다. 현지에서 만난 한국 학생들은 우수한 성적 비결에 대해 "가족 같은 분위기와 한국문화센터 덕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도서관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의 교내에 있는 한국문화센터를 찾아가 봤다. 1인 1실인 개인 방을 포함해 한식 레스토랑, 독서실, 세탁실 등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갖춘 건물이었다. 한국 학생들은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독서실이나 세미나실에서 새벽까지 공부하고 있었다. 졸업생 함창수(27세)씨는 "이 건물은 보안키 없이는 출입이 안 되고 엘리베이터도 탈 수 없다"며 "헝가리 음식이 매우 짠 편인데 한식 레스토랑이 있기 때문에 별걱정 없다"고 말했다.
이곳에 다니는 한국 유학생은 모두 거창국제학교(www.gis.or.kr)를 거쳤다. 지난 2005년 글로벌 의학영재 양성을 목표로 설립된 거창국제학교는 데브레첸 국립대와 협약을 맺어 의학 기초과정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매년 7월 데브레첸 의대 교수진이 거창을 방문해 이곳 졸업생을 대상으로 필기·실기·구술 시험을 시행해 입학생을 최종 선발한다. 국제중을 자퇴하고 데브레첸 의대에 최연소(당시 16세) 입학한 최현덕(21세)씨는 "데브레첸뿐 아니라 거창에서도 하루 5시간만 자고 공부해야 버틸 수 있을 만큼 힘들었다"면서도 "학생들 사이에 남다른 유대감이 형성돼 있어 잘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엔 거창국제학교 출신의 첫 데브레첸 의대 졸업생 8명이 나왔다. 그 가운데 1명은 독일 수련의 과정에 있고, 2명은 USMLE에 합격했다. 함승훈 거창국제학교 이사장은 "의사가 줄고 있는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을 전공으로 택한 학생이라면 국내 의료계 진입도 '좁은 문'이 아닐 것"이라고 전망했다.
☞데브레첸 국립치·의과대학
데브레첸 국립대는 지난 1538년 개교했다. 헝가리에 있는 국립의대 4곳 중 하나인 데브레첸 국립의대는 높은 의료 수준과 저렴한 진료비 때문에 유럽 각지에서 환자들이 몰려온다. 현재 70개국 7000여 학생이 재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