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죽었다. 목을 맨 채. 32년을 살며 죽은 사람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슬픔을 추스르기에도 빠듯한… 단 며칠이나 지났을까. 장례를 치르자마자 세간이 떠들썩해졌다. 온 세상이 "네가 죽였다"며 삿대질을 해댔다. 간통남에서 패륜남이 됐고, 막장드라마의 주인공이 됐다. 머지않아 사그라지기는커녕 갈수록 막나가는 얘기는 그칠 줄을 몰랐다. 지난 1년간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던 '불륜남' 신모 씨를 만났다. "어떻게 지냈느냐"는 의례적인 대면 인사에 그는 "사람 구실 못 하고 살았다"고 했다.

덥수룩한 수염 같은 건 없었다. 만나기 전 상상했던 '사건 당사자' 이미지와는 달랐다. 그보다는 여느 말쑥한 회사원처럼 단정해 보였다. 9월 초, 신 씨를 만난 건 분당의 한 지하철역 인근 카페에서였다.

그는 약속 시간을 정확히 지켰다. 오후 2시. 후식을 즐기려는 무리들 사이로 혼자 들어서는 사람은 신 씨뿐이었다. 푸른 면바지와 편한 반팔 티셔츠 차림. 조용히 걸어와 앉더니 메고 있던 백팩을 의자 뒤에 걸었다. 차가운 커피를 시켜놓고 한동안 말이 없던 그에게 긴 시간 이어온 침묵을 깬 이유를 물었다. 그는 "그간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다"고 운을 뗐다.

“애초에 이렇게까지 불거질 필요가 없었던 일입니다. 일종의 가정불화에서 그칠 수도 있었어요. 받아야 할 벌이 있다면 그만큼만 받으면 될 텐데, 훨씬 가혹했습니다. (제) 신상이 다 유포됐고, 상대방(내연녀)과 양측의 엄마, 아빠, 동생의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전부 다 퍼져 나갔어요. 그것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집으로 전화를 해 ‘죽여버리겠다’고 하기도 했고요.”

신 씨는 “잘못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그러나 본질적으로 접근을 하면, 기존에 알려진 말들은 많이 과장돼 있다”고 했다.



한 편의 막장드라마
냉정하게 말하면 사법연수원 불륜사건은 막장드라마가 맞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고, 이후 아내는 자살했다. 장모는 1인 시위를 통해 딸의 죽음을 알렸고 그와 동시에 사위에게 위자료를 요구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살한 아내도 맞바람을 피웠다더라….
야속하겠지만 제삼자 입장에서는 극적인 요소를 다 갖춘 '가십거리'다. 게다가 이 사건은 잊을 만하면 다시금 화제가 되기도 한다. 아내의 친가 측과 신 씨가 몇 개월째 벌이는 법적 공방(손해배상 및 간통) 탓이다. 재판 과정이 공개될 때마다 세간은 다시 이목을 집중한다. 그래서 신 씨는 "TV도 신문도, 인터넷도 안 본다"고 했다.

이 자극적인 이야기가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기 시작한 건 지난 2013년 9월께다. 정황은 이렇다. 신 씨와 그의 부인인 최모 씨는 한 법대의 동갑내기 캠퍼스 커플이었다. 둘은 2005년부터 교제를 시작했다. 사법시험을 같이 공부하던 사이였고, 신 씨만 최종 합격했다. 신 씨는 2011년 3월 사법연수원에 입소했지만 곧바로 휴학했다. 다음 달인 4월 둘은 혼인신고를 하고 같이 살았다. 결혼식은 따로 안 했다. 나중에 (결혼식을) 올리자고 했지만, 결국 못 올렸다. 그러다 신 씨는 2012년 3월 복학했다. 그는 입소 5개월 이후인 8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약 9개월간 내연녀 A씨를 만났다. 신 씨는 A씨에게 혼인 사실을 숨긴 채 오랫동안 교제한 여자 친구가 있어 조만간 결혼을 할 것이라며 거짓말을 하고 연인 관계를 유지했다.

부인 최 씨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2013년 5월께였고, 사실이 발각되자 그는 A씨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이후, 신 씨는 아내 또한 외도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2011년 8월 중순부터 2013년 중반께까지 약 2년간. 그러던 2013년 7월 31일, 아내는 일산 자택에서 돌연 목을 매 자살했다.

"너무 힘들었죠. 어쨌든 오래 만났던 사람이 그렇게 가면, 그 충격을 버티기가…. 죽은 사람 처음 본 거거든요.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와이프인데. 검찰청에서 시보하고 있을 때였는데 그 충격, 슬픔을 안고 근무를 하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런데 언론에는 계속 왜곡된 기사가 나갔고요. 커뮤니티에서는 말도 안 되는 루머들이 퍼져 나가고 있더라고요."

침묵 깬 이유… “무서웠다”

소위 말하는 ‘팩트’ 자체도 충격적인데, 이 얘기는 갈수록 ‘막장’으로 치달았다. 그리고 사람들의 반응은 극렬했다. 이를테면 내연녀가 아내의 유품을 ‘중고나라’에 팔았다, 아내가 남긴 유서를 지우기 위해 노트북을 포맷했다, 내연녀 A씨는 결국 더 좋은 조건의 남성과 결혼했다는 얘기가 ‘몰랐던 사실’이라는 이름으로 나돌았다.

“모두 루머입니다. 중고나라의 경우 재판부에서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고요. 상대방 여성이 결혼했다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그 사람도 지금 (상황이) 말이 아니라 조용히 살아야 하는데 결혼을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심지어 아내의 자살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댓글도 떠돌았다. 유서를 써놓은 노트북을 포맷했다더라, 하는 상세한 정황과 함께.

“생각해보십시오. 아내가 유서를 남길 거라면, 왜 제가 가장 먼저 보게 될 노트북에 남겼겠어요. 굳이 남겨야 했다면 친가 쪽에 보내지 않았을까요? 제가 안 한 걸 어떻게 안 했다고 증명하겠습니까. 유서를 지웠다는 건 말도 안 되고요, 지웠다는 증거 자체도 없습니다.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니 그것에 편승해 막나가더라고요. 정말 무서웠습니다.”

처음 이 글이 게재됐던 한 포털사이트의 카페는 사과문을 올린 채 폐쇄된 상태다. 이후 카페 운영자는 아내 여동생의 친구로 밝혀졌다.

“제 와이프를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더라고요. 그러니까 이 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운영한 거죠.”

사실과는 다른 얘기들이 난무하자 주변 친구들은 빨리 손을 쓰라고 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와이프에 대해서 얘기해야 하니까요. 그게 굉장히 부담스러웠습니다. 죽은 사람의 사생활을 얘기해야 하니까 조심스러웠어요. 또, 연수원에 있을 땐 제가 공무원 신분이었잖아요. 함부로 인터뷰를 못 했죠.”

그는 “하다하다 너무한다 싶어서 입을 열게 됐다”고 했다.

아내의 죽음, 그 뒷얘기
신 씨는 '아내 또한 바람을 피우고 있었는데, 왜 나만…' 이런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고 했다. 일명 '맞바람'을 피웠던 둘은 "다시 잘해보자"며 마음을 추스르던 참이었다. 신 씨는 이 부분을 강조했다. 실제로 올해 8월 법원은 최 씨의 죽음에 대해 신 씨가 책임질 필요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적어도 법적으론 그렇다.

그렇다면 아내는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걸까. 그는 "아내의 죽음에는 뭇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좀 더 복잡한 요소가 얽혀 있다"고 했다.

작년 5월 초. 최 씨는 남편의 불륜 사실을 내연녀 A씨를 통해 알았다. 내연녀에게 직접 듣는 남편의 바람. 그 심정이 오죽했으랴.

"상처가 컸을 거예요. 그만큼 구박을 많이 받았죠. 전화기를 빼앗기고, 볼펜으로 머리를 찍히기도 했고요. 죄를 지었으니 시키는 대로 다 했지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고통스럽게 살았습니다."

신 씨와 A씨의 9개월간의 불꽃놀이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아내가 훨씬 이전부터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는. 신 씨는 '아내의 외도'에 대해 얘기할 때는 굉장히 조심스러워했다. 그는 "이 얘기가 부각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면서 최대한 절제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톤이 올라갈라치면 다시금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차분하게 말했다.

"배신감을 많이 느꼈죠. 본인도 바람을 피우는 중이면서 저를 그렇게 대했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웬만하면 용서를 하는 편입니다. 화가 많이 났지만 용서하기로 했어요. 그런데요, 아내 심정은 어땠겠습니까. 저한테 미안했겠죠. 어디 미안한 정도겠어요. 죄책감을 심하게 느꼈습니다. 당시 둘 다 교회를 다녔는데, '죽는 게 합당하다. 그렇게 내 죄를 사할 수 있다면…'과 같은 말을 할 정도로 심하게 괴로워했습니다."
신 씨는 "차라리 나 혼자 걸렸더라면, 구박만 좀 받고 말았을 것"이라면서 "(나에 대한) 배신감에다 죄책감이 더해졌으니 많이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 씨는 또한 "그날(사고 당일) 아내가 약(수면제)을 안 먹었더라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예전부터 함께 공부를 할 때 수면제를 복용할 정도로 (아내의) 신경이 불안정했습니다. 같이 살 때에도 혼자 있으면 약을 챙겨 먹었어요. 그런데 수면제 먹었을 때의 (아내의) 모습을 제가 알거든요. 그 사람은 술을 안 마시는데,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행동을 해요. 잠들기 한 20~30분 전까지의 모습이 대부분 그랬어요. 아마 (그날도) 환각 상태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아요. 현장에 가보니 충동적으로, 환각 상태에서 했다고밖에 안 여겨질 정도였어요. 침대가 굉장히 높았는데, 강아지가 그 위에서 벌벌 떨고 있고…. 죽음에 대한 아무런 준비가 없었어요."

한편 최 씨의 친가 쪽은 불면증에 대해서 "남편의 간통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 시달리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재판부 또한 "남편의 부적절한 행동 등 순탄치 않은 혼인생활이 불면 증세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싹싹 빌고, 잘해보려 했는데…
아내의 죽음 전으로 돌아가보면 둘에겐 여지가 있었다. 작년 4월 미뤄왔던 결혼식을 올리자는 얘기도 나눴다. 같이 산 지 2년 만이었다. 그러다 신 씨의 외도 사실이 발각됐고 다소간의 다툼이 있었지만 부인 최 씨는 오히려 결혼식을 앞당기자고 했다. 최종적으로 결정된 결혼식 일자는 2013년 7월 13일 오후 12시.

"정말 많이 빌었습니다. 와이프한테는 물론이고 장모님한테도요. 반성도 많이 했어요. 명백히 제 잘못이니까요. 저희 집안 어른들도 모두 찾아가서 빌었습니다. 그러다 장모가 와이프의 외도 사실도 알게 됐어요."

신 씨에 따르면 여기까진 괜찮았다. 그러나 "장모가 둘 사이에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둘 사이에 역효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쌍방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장모가 갑자기 둘 사이에 '개입'했다는 주장. 그게 사실이라면, 개입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신 씨의 주장에 따르면 장모 L씨는 쌍방 외도로 둘 사이가 틀어질까 봐 노심초사했다.

"연수원 있을 때까지만 살다가 이혼하려는 거 아니냐며 계속 의심을 하다가, 만일 이혼하게 되면 어떻게 하겠다는 협박성 메시지도 보내셨습니다. 안 그래도 죄책감을 많이 느꼈던 아내를 제 앞에서 심하게 질책하기도 했고요. 또 제가 (장모님한테) 시달리는 모습을 보고 아내가 미안해하기도 했습니다. 아내는 그 무렵 제게 '엄마 때문에 괴롭다', '엄마와 같이 있기 싫다'는 문자를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들은 6월 말 협의이혼을 신청했다. 그렇지만 신 씨의 주장에 따르면 둘은 협의기일 당일에도 '다시 잘해보자'는 마음에 출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랫동안 만난 정이 있어서 (서로를) 그렇게 쉽게 버리지 못해요. 협의이혼을 신청하고도, 숙려기간이 있잖아요. 그것까지 견뎌보자 했었어요. 와이프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둘 사이에 대한 판단이) 왔다 갔다 했어요. 남녀 사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서로 어떻게든 살았을 텐데…. 와이프가 진짜 힘들었을 거 아니에요. 자신의 외도 정황이 낱낱이 드러나 있는 문자나 사진을 제가 다 봤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엄청 괴로웠을 겁니다. 자존심이 아주 셌던 애라 아마 더 그랬을 거예요. 그런데 잘해보라고 다독거려주시지는 못할망정, 그렇게 몰아세운 게 이해가 안 됩니다."

아직도 아내 생각에 운다
인터뷰 내내 신 씨는 덤덤한 어조로 심경을 털어놨다. 일련의 일들을 겪은 사람이라 믿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 그에게 "요즘도 아내가 가끔 생각나느냐"고 물었다. 신 씨는 잠시간 머뭇하더니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면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며 말을 아끼려 했다.

"집안 어르신 입장에선 그렇잖아요. 애초에 반대했던 결혼이고, 어쨌든 제 걱정이 크니까…."

그가 이내 말을 이었다.

"사실 저는 아직도 정신 못 차렸어요. 작년에는 되게 많이 울었어요. 시도 때도 없이요. 그리고 최근 들어서 소송 관련 자료를 작성할 때, 그 사람과 주고받았던 대화를 다시 열어봐야 하잖아요. 새벽까지 서류를 작성하는데, 그럴 땐 너무 눈물이 나요. 진짜 펑펑 울어요. 그런 거 볼 때…."

목이 멘 채 말을 잇던 그는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담배를 피우고 온다며 자리를 비우더니, 돌아와 앉아 얘기를 이어갔다.

"7월 31일이 와이프 기일이었잖아요. 기일을 이틀 앞두고 친구랑 술을 마시고도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저는… 그 사람이 너무 불쌍해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주로 침대에 누워서 컴퓨터를 했어요. 옆에는 약봉지가 있고요. 한쪽엔 강아지를 끼고…. 그런 모습이 자꾸 생각나요. 마음이 너무 아파요."

살아생전 아내의 마지막 모습은 아직도 그의 마음을 아리게 했다.

"아내가 가기 일주일 전이었어요. 운전하는데, 집에서 그렇게 누워 있을 아내 모습이 생각나 눈물이 막 나더라고요. 평상시보다 5킬로그램 이상 꽉 말라가지고, 맘고생은 또 얼마나 심할까. 엄마와 나 사이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부담이 됐을까…."
울먹이던 신 씨가 힘겹게 말을 더했다.

"올해 초부터 아내의 친가 쪽과 법적 대응을 시작하면서 와이프가 안치돼 있는 곳에 다녀왔어요. 가서 말했어요. 미안하다고요. 그런데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원망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요. 그 사람이 하늘에서 봤을 때 장모님께 이러는 제가 미울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나도 어쩔 수 없을 것 같다고…. 이렇게까지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그렇게 말했어요."

신 씨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은 현재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다 됐다.

"다들 안 좋죠. 아버지가 계신 학교에 장모가 직접 전화해서 총장에게 이 사실을 알릴 거라고 한바탕 난리였고요. 엄마와 동생도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하고 있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건지 물었다. 항간엔 미국으로 간다더라, 개명을 하고 변호사 시험을 본다더라 하는 풍문이 있었다.

"당장은 모르겠어요. 뭐라도 어떻게 해봐야죠. 부모님께서 많이 힘들어하시니까 잘 이겨내서, 그동안 마음 많이 아프게 해드렸던 것 갚아나가며 살아야죠."

고소진행 상황은?

“의미 없는 싸움… 두 번 죽이는 일”

지난해 10월 파면당한 신 씨는 현재 아내의 친가와 치열한 법적 공방을 펼치고 있다. 주된 공방은 아내 친가 측에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이다.

친가 측은 "망인(아내)이 신 씨의 간통 사실을 알게 돼 불면증에 시달리는 등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음에도 망인을 모욕했다"면서 "부부로서의 동거, 부양, 협조 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않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등의 이유로 5억원을 청구했다.
당초 양측은 위자료 명목으로 5억원을 주고받기로 합의했다.

신 씨 측은 "(당장 그렇게 많은 돈이 없기 때문에) 아버지 소유의 아파트를 (장모에게) 이전등기하고, 나머지 금액은 연수원을 수료하고 직장을 구하면 154개월 동안 매월 2백만원씩 갚겠다"는 내용으로 합의했다. 친가 측은 (신 씨가) 이 내용을 이행한다면 "관련 기관에 진정하거나 언론에 제보하는 등 불이익을 줄 수 있는 행동을 일절 하지 않겠다"고 했다.

신 씨는 "그런데 피켓시위부터 시작해서 파면 요구 진정서까지 합의서 상의 의무사항을 어기는 행동들을 했다"면서 "그래서 결국 파면됐다"고 말했다.

한편 친가 측은 "피켓시위 및 파면 요구 진정서는 신 씨가 아닌, 그의 내연녀 A씨를 대상으로 한 것이므로 합의 내용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올해 8월 14일 이에 대한 서울중앙지법의 1심 판결이 나왔다. 이에 따르면 신 씨는 위자료로 3천만원을 지급해야 한다. 판결문은 "망인(부인)이 신 씨의 불륜 행위를 알게 된 후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은 점, 신 씨와 L씨(장모) 사이에 이 사건과 관련해 총 5억원 상당의 위자료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는데, 비록 이 사건 합의가 주로 신 씨의 사법연수생 신분 유지를 위한 목적에서 이뤄진 것이라 해도, 이 사건과 관련해 망인이 입은 정신적 손해를 위자할 목적 역시 일부 포함된 것으로 보이므로 위자료 액수 산정에서 이를 일정 부분 고려해… (중략) 망인에 대한 위자료 3천만원을 지급하라"고 명시했다.

파면 직후인 지난해 11월 말, 신 씨는 간통으로 고소되기도 했다. 이에 신 씨는 "부인에게 이미 용서를 받아 간통죄로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해왔지만 결국 최근(9월 2일) 신 씨와 A씨는 간통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수원지검 형사2부).

신 씨는 그럼에도 의미 없는 싸움을 지속해야 하는 이 상황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내) 인생 망칠 거면 망치고, 돈을 받을 거면 받아내고, 둘 중 하나만 선택했어야 했다"면서 "준비서면을 제출하면서도 (친가 측에서) 소를 취하하길 바랐다. 애꿎은 소송은 아내를 두 번 죽이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장모 L씨 입장

“그 상황에 어떤 엄마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인터뷰 이후 장모 L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L씨는 힘없는 목소리로 받았다. 그는 한숨과 함께 "특별히 할 말이 없다"고 했다. 많이 지친 듯했다. "기사가 자칫 편파적일 수 있으니, 힘들겠지만 몇 말씀 부탁드린다"는 거듭된 요청 끝에 L씨는 말문을 열었다. 그는 우선 "자기(신 씨)가 무슨 할 말이 있어서 인터뷰를 했는지 기가 막힐 노릇"이라고 했다.

"나는 그 ○○놈 얘기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요. 죽은 애를 갖다가 부관참시(剖棺斬屍)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 하는 꼴 보세요. 무슨 짓을 (더) 하는지 한 번 보려고요. 8년을 함께한 사람에 대한 마지막 예의도 안 지키는 그런 사람한테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장모의 개입으로 역효과가 났다는 주장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런 마당에 나 몰라라 손 놓고 있는 엄마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어요. 오히려 그쪽(신 씨) 엄마가 우리 딸한테 어떻게 했는데요. 그런 일(외도) 있기 전부터 우리 딸한테 어떻게 했는데….(부인 최 씨는 혼인신고를 전후해 신 씨 어머니의 심한 반대로 마음고생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냥 조용히 행정소송만 진행하면 될 것이지, 이 와중에 내가 뭘 개입했다느니 그런 말은 왜 하고 다닌답니까."

그는 통화 말미에 "딸이 저세상으로 간 지 1년이 넘으니, 옆에 없다는 게 더욱 실감이 나서 너무 힘들다"고 말하며 다소 격해진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죽은 사람 두고 살아 있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맞바람 사실을 법정에 공개 등)까지 합니까. (신 씨는) 정말

사람이 아니에요. 할 말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 더 많은 기사는 여성조선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