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구에서 세 개의 영상이 돌아간다. 긴 머리를 늘어뜨린 남자가 벌거벗은 채 의자에 앉아있다. 수면제를 복용해 가수면 상태다. 남자를 지켜보던 관객들이 하나둘 일어나 옆 의자에 앉는다. 나란히 사진 찍는 이도 있고, 자기 외투를 벗어 남자의 어깨에 걸쳐주는 이도 있다.

Untitled, 2012, 혼합매체, 150×100㎝.

현대 중국의 대표 작가 마류밍(44·馬六明)이 스위스 제네바와 독일 뮌스터, 뒤셀도르프를 돌며 펼친 나체 퍼포먼스 연작 '펀(芬)·마류밍'이다. 1998년 '신체 해방'을 부르짖으며 나체로 만리장성을 걸은 작가는 또 다른 자아인 '펀(芬)·마류밍'을 만들어냈다. '펀'은 여자 이름에 흔히 쓰이는 한자이면서 '분리하다'는 한자(分)와 동음이의어. 그는 "모든 구속과 압박에서 벗어나려는 자유"라고 했다.

마류밍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개인전이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1990년대 나체 퍼포먼스 영상과 사진부터 최근의 그림과 조각까지 20여년에 걸친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그림 23점을 포함해 48점이 나왔다. 작가는 2004년을 기점으로 퍼포먼스를 마무리하고 이전의 나체 퍼포먼스 순간을 회화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성긴 캔버스 뒷면에서 물감을 망 사이로 밀어넣는 '누화법(漏畵法)'이 그의 독특한 화법이다. 격자 무늬의 망 사이로 빠져나온 물감이 도톰한 질감을 빚어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물감 기름 성분이 주변으로 번져나가 오묘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10월 5일까지. (02)720-1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