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겐 이 그림들이 칠흑 어둠 속의 빛이라예."

부산의 장애인 화가 김정욱(49·사진)씨가 지난 16일부터 보름 일정으로 경주 보문단지 콜로세움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노란 매화, 흰 연꽃, 7월의 숲, 가을의 시골 등 20점이다. 손가락 신경이 죽어 팔뚝에 압박붕대로 붓을 묶어 그린 그림들이다. 18년 전 교통사고로 전신마비 중상을 입은 후유증이다. 하지만 그림은 어둡지 않다. 주로 짙은 색을 썼지만 밝은 기운이 있다고들 말한다. 그는 "희망이 느껴지는 생명, 그리고 탄생이 좋다"고 했다.

그는 해군 하사관 복무를 마치고 3년간 상선을 탔다. 이후 5년은 순경으로 근무했다. 1996년 부친상을 마치고 장지에서 돌아오다 교통사고를 당해 5년간 누워 있었다. 어머니가 대소변을 받아냈다. 게다가 사기를 당해 사고 보상금을 포함한 거의 전 재산을 날려 기초생활 수급자로 전락했다. 이후 몸 상태는 서서히 나아져 2001년엔 몸을 굴려 앉을 수 있게 됐고, 몇 달 뒤 휠체어에도 올라탈 수 있었다. 하지만 신세 한탄에 술로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가 장애 도우미들과 동창들의 격려에 방송통신대 영어영문과에 등록해 졸업했다. 붓은 2007년에 잡았다. "놀면 뭐하노. 취미 삼아 살살 그려보라"며 고교 시절 미술반 친구들이 권했다. 김씨는 "다시 붓을 잡으니 마음속 그늘이 옅어져 갔다"고 했다. 처음엔 하루 1시간, 요즘은 3시간가량 작업한다.

김씨는 아직도 가슴 밑은 마비된 상태이고, 팔도 손목까지만 쓸 수 있다. 작품 하나 완성하려면 한 달 넘게 걸린다. 그래도 7년 동안 김해미술대전 특선 등 4번 상을 받았고, 경남아트페어 부스에서 전시회도 가졌다. 하지만 갤러리에서 연 번듯한 개인전은 처음이다. 고교 동기들이 돕기 운동에 나섰고, 갤러리를 가진 선배가 공간을 내주었다. 콜로세움갤러리 최봉근(52) 관장은 "친구를 생각하는 후배들이 갸륵해 동참했다"고 말했다. 작품도 주로 동문들이 사주면서 현재 절반가량 팔렸다.